[이형석의 리플레이] 삼성과 진갑용, 함께 해서 행복했던 17년

    [이형석의 리플레이] 삼성과 진갑용, 함께 해서 행복했던 17년

    [일간스포츠] 입력 2015.08.07 08:18 수정 2015.08.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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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갑용은 지난 17년간 삼성의 안방을 책임진 대들보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첫 우승(왼쪽) 때에도, 2005~2006 2연패(가운데) 때에도, 2011년부터 시작된 삼성 왕조의 ‘장기집권’ 때에도 진갑용만큼은 늘 함께였다.


    삼성 주전 포수 이지영을 전반기 막판 인터뷰했다. "올 시즌 기량이 많이 발전했다"는 이야기에 그는 이같이 말했다. "진갑용 선배를 이어 삼성 포수는 공격과 수비 모두 좋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그리고 "진갑용 선배는 마흔이 넘어서도 방망이를 잘 치고 투수 리드를 잘한다. 아직도 내가 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다"고.

    그런 진갑용이 정든 포수 마스크를 벗는다. '현역 최고령 선수' 진갑용은 6일 구단을 통해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당분간 전력분석원 업무를 소화한다. 올 시즌까지 KBO 등록선수 신분은 유지하며, 공식 은퇴는 시즌 종료 후 이뤄질 예정이다.

    야구에서 가장 힘든 포지션을 꼽으라면 '포수'라는 답변이 가장 많다. 마스크와 프로텍터, 가드 등 장비를 무장하고 쪼그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한다. 자주 공에 맞기도 한다. 부상 위험이 많아 다른 포지션에 비해 선수 생명이 짧은 편이다. 진갑용은 그 힘든 시간을 가장 오랫동안 견뎌온 선수다.

    진갑용은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왔다. 부산고-고려대를 졸업하고 1997년 두산(당시 OB)에 입단했다. 이후 2년 간 주축 선수로 활약했으나, 1999년 홍성흔이 입단하면서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 삼성은 포수가 필요했다. 삼성은 이만수 이후 포수 기근 현상에 시달렸다. 늘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주저하자 '안방 강화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뒤따르곤 했다. 당시 정회열과 김영진이 안방을 지켰으나 뭔가 허전했다. 이에 삼성은 투수 이상훈에 현금 4억원을 얹는 대신 진갑용을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왔다.

    OB 시절(왼쪽)과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막 입었을 때의 진갑용. 진갑용은 “삼성은 나를 살려준 팀이었다”며 “삼성에서 뛰지 않았다면 좀 더 빨리 은퇴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진갑용과 삼성은 1999년 8월 1일부터 함께 했다. 이후 진갑용을 삼성을 대표하는 안방마님으로 자리잡았다. 2001년 김동수가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됐지만, 진갑용은 경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포수로는 김동수, 박경완 선배를 존경한다"면서 "특히 김동수 선배랑 같이 야구하면서 많이 늘었다. 이 형을 못 이기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라이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털어놨다.

    진갑용과 삼성은 이후 좋은 추억을 함께 만들어 나갔다. 삼성은 2002년 LG를 꺾고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당시 안방마님이 바로 진갑용이었다. 진갑용은 이후에도 6차례(2005~2006년, 2011~2014년) 더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이 터진 2002년을 제외하면, 나머지 6번 모두 우승을 확정하는 마지막 공은 진갑용이 받았다. 특히 2002년과 2005년, 2006년 등 세 차례 골든글러브는 삼성에서 뛰는 동안 수상했다.

    그래서 진갑용은 17년간 입은 푸른 유니폼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그는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으로 옮긴 건 제 2의 야구인생 시발점이었다. 나를 살려준 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삼성에서 뛰지 않았다면 좀 더 빨리 은퇴했을 것 같다. 의욕도 많이 없었을 테고"라며 "삼성에 처음 올 때만 하더라도 우승에 목마른 팀이었다. 그런데 이후 7차례의 우승 역사를 같이 했다"고 기뻐했다.

    진갑용은 국내 최고령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올 시즌 끝까지 뛰는 만큼, 이 기록은 얼마든지 경신할 여지가 남아있는 셈이다. 사진은 지난 5월 14일 최고령 홈런을 경신한 후 류중일 감독의 축하를 받는 진갑용.


    진갑용도 불혹에 접어들면서 점점 출전 시간이 짧아졌다. 각종 부상에 시달렸다. 특히 2015년 스프링캠프에는 뒤늦게 합류한 뒤 "이제 몸이 성한 곳이 별로 없다. 제발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앞서 2013년 종료 뒤엔 구단으로부터 플레잉코치직 제안을 받았지만 선수 연장 의지 속에 연봉 삭감을 받아들이고 계속 뛰었다. 지난해는 후반기 막판 합류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큰 존재감을 발휘했다. 이에 류중일 삼성 감독이 "진갑용에게 50세까지 선수 하라고 할까"라고 농담까지 한 적 있다.

    국가대표에서도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2008년 쿠바와의 결승전 9회 1사 만루에서 갑자기 마스크를 쓴 뒤 내야 병살타로 유도하면 환호했다. 또 2006년,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도 함께 했다. 국가대표 바통을 이어 받은 차세대 안방마님 롯데 강민호는 진갑용과 박경완을 대한민국 최고 포수를 꼽았었다. 그는 "두 선배와 국가대표를 같이 해보니까 서로의 스타일이 있더라. 박경완 감독님은 전적으로 차분하게 자기 생각대로 경기를 이끌어 가는 스타일이고. 진갑용 선배님 같은 경우는 투수의 좋은 공을 더 끄집어내 리드를 하는 스타일이다"고 말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 쿠바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정대현(왼쪽)과 함께 기뻐하는 진갑용.


    진갑용은 당분간 전력분석원으로 일하다 해외 연수를 떠날 예정이다. 삼성은 이를 지원할 예정이다. 구단 관계자는 "그 동안 해외 장기 연수를 지원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진갑용이 팀에 공헌한 점을 높이 사 해외 연수를 도울 예정이다"고 밝혔다. 진갑용도 "구단과 상의를 해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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