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문 “한국야구 최초 너클볼러는 대만 출신 서생명”

    양상문 “한국야구 최초 너클볼러는 대만 출신 서생명”

    [일간스포츠] 입력 2015.09.2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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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 외국인 투수 크리스 옥스프링(38)은 KBO리그에서 유일하게 너클볼을 주무기로 하는 투수다.

    양상문 LG 감독은 21일 잠실 kt전에 앞서 옥스프링을 거론하며 "2~3년은 거뜬히 더 던질 수 있는 투수"라고 평가했다. 이유는 역시 너클볼. 힘을 써서 던지는 구종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너클볼 투수는 장수한다. 너클볼 투수를 상징하는 등번호는 49세다. '49세까지 던질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48세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뛴 전설적인 너클볼러 필 니에크로를 기념하는 번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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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OB 에이스 박철순은 미국에서 배워 온 너클볼을 선보였다. 마이너리그 시절 그에게 너클볼을 전수했던 인물은 명 너클볼러 톰 캔디오티였다. 1970년대 초반 고교야구에선 광주상고 김영수라는 투수가 너클볼을 던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양 감독이 '한국 야구 최초의 너클볼러'로 꼽는 인물은 따로 있다. 단, 한국인 투수는 아니었다. 1984~1988년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의 에이스였던 대만 출신 쉬성밍이다. 한국식 표기론 서생명. 양 감독은 롯데에 입단하기 1년 전인 1984년 한국화장품 동료로 쉬성밍을 만났다. 당시 양 감독은 고려대 대학원에서 체육교육학 석사 학위를 밟기 위해 프로가 아닌 실업행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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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A 라이노스 수석 코치 시절의 쉬성밍.

    양 감독은 "쉬성밍은 투구의 20~30%를 너클볼로 구사했다"고 말했다. 박철순의 경우 너클볼은 아주 간간히 던지는 수준이었다. 역시 미국에서 배워왔던 팜볼이 너클볼과 혼동되기도 했다. 너클볼을 주무기로 삼았다는 기준에서라면 적어도 성인 야구에선 최초 너클볼러를 쉬성밍으로 봐도 무방하다. 양 감독은 "우리 때는 야구 교본에 너클볼은 손가락 끝마디로 잡는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쉬성밍은 손가락 끝으로 공을 눌렀다"고 회상했다. 니크로의 경우 둘째와 셋째 손가락 끝으로 공을 눌렀다.

    양 감독도 쉬성밍의 너클볼을 따라 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는 "그 그립으로 너클볼을 던지기 위해선 손톱이 강해야 했다. 손끝으로 튕기면서 던지는 구종이기 때문이다"며 "그런데 따라서 던져보니 손톱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쉬성밍은 남들보다 손톱이 두꺼웠다고 했다. 양 감독은 "보통 사람 세 배 두께는 됐다. 마치 널판지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도 빨랐다. 직구 구속이 시속 145km는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쉬성밍은 1988년 시즌을 끝으로 대만으로 돌아갔다. 자국 프로리그에서 감독으로 통산 715승을 거뒀고, 2003년엔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지난 2013년 심근경색으로 55세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 했다. 생전에 그를 자주 만났던 대만 야구 전문가 김윤석씨는 "쉬성밍씨는 한국 프로야구 입단을 여러 차례 타진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 제도가 없던 때라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의 친구인 뤼원셩 전 통이 라이온즈 감독도 '쉬성밍이 너클볼을 던졌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과거 많은 한국 선수들이 대만 프로야구에서 뛴 데는 쉬성밍의 조력이 컸다. 쉬성밍은 아마도 한국 야구 최초의 너클볼러였을 것이다. 그 뒤를 호주 출신인 옥스프링이 잇고 있다.
     
    최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