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술 한잔 못하는 ‘막걸리 해설’ 이상윤

    [인터뷰] 술 한잔 못하는 ‘막걸리 해설’ 이상윤

    [일간스포츠] 입력 2013.05.15 07:00 수정 2013.05.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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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헤헤헤헤."

    이상윤(44) 축구 해설위원이 해설하는 경기에서는 갑자기 터져나오는 이런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무게를 잡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직설 화법이 매력 포인트다.

    '이상윤 어록'도 나왔다. 이 위원은 지난 2010년 전광판에 소개된 경품 'VIPS(빕스)식사권'을 'VIP(브이아이피)식사권'이라고 말했다. 경기 끝날 때까지 자신의 실수를 알지 못했다. 지난 4월에는 "벌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쏜다"라며 벌과 나비를 바꿔말했다. 우락부락한 얼굴의 박희성(서울)을 보고는 "고릴라를 좀 닮았죠"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나이스", "대박", "오마이갓" 등 특유의 감탄사도 마구 쏟아져 나온다.

    이 위원은 이 때문에 '막걸리 해설'이란 별명이 붙었다. 팬들은 "이상윤 위원이 해설하면 술집에서 축구를 보는 것 같아 신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 한다. '솔직하고 재미있게 하자'는 좌우명에 따라 해설을 하다 보니 음주 방송이란 오해를 받은 것뿐이다.

    목에 가래가 낀 듯한 거친 웃음소리 때문에 '가레스(가래+축구선수 가레스 베일) 상윤'이라고 부르는 팬도 있다. 그는 현재 프리랜서 신분으로, 2006년 MBC스포츠플러스에서 해설을 시작해 올해 TBS교통방송까지 발을 넓혔다. 이 해설위원은 선수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K리그와 해외축구를 동시에 중계한다. 지난 10일 그를 만났다.

    -막걸리 해설이라는 별명은 마음에 드나.

    "캬~ 막걸리 해설. 그 질문 기분 좋다. 별명 있는 해설위원이 많지 않다. (별명이) 좋든 싫든 팬들이 기억해주는 것 아닌가. 중계를 하면 흥이 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소리가 경박해지고 말이 많아진다. 해설은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 '이상윤 스타일'로 계속 밀고 나가겠다."

    -호불호가 갈리는 해설인 것 같은데.

    "호불호? 좋고 싫고? 이 단어 진짜 마음에 든다. 하하. 다음 경기 해설에 호불호라는 단어 반드시 써야겠다. 내가 어휘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해설 소스를 많이 얻는다. 악성 댓글을 보면 웬만하면 참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한다. 지금은 이상윤을 싫어하는 사람이 꽤 있지만 2~3년 안에 모두 내 팬으로 만들겠다. 자꾸 듣다 보면 가래 낀 목소리도 나름 매력적이지 않나. 으헤헤."

    -어록이 많다.

    "일단 팬들에게 사과부터…. 영어 발음도 부족하고 영어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솔직히 좀 힘들다. '나이스'와 '대박'을 연발하니 어머니가 듣기 안 좋다고 그만하라고 하더라. 하하.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어떡하겠는가. 특히 해외 선수 이름 부르는 건 조심해야한다. 과거 파스토레(파리생제르맹)를 파스퇴르라고 불렀다. 축구선수를 우유로 만들어 놨으니 욕먹어도 싸다. 노력해서 고치겠다."

    -앙헬 디마리아(레알 마드리드)를 디마리오로 잘못 말하더라.

    "(깜짝 놀라며)대박. 오마이갓. 내가 진짜 그랬나. 왜 아무도 지적을 안 해줬는지 모르겠다. 알렉슨 퍼거슨(알렉스 퍼거슨), 마리오 만주키추(마리오 만주키치) 등 잘못 말한 게 많다. 앞으로 꼭 디마리아라고 하겠다."



    -벌써 해설위원 8년차다. 주위 반응은.

    "지난해부터 서서히 반응이 온다.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김남일(인천 유나이티드)이 전화 와서 '예전에는 정말 못 들어줬는데 요즘은 괜찮더라'라고 돌직구를 날리더라. 기분 상할 뻔했는데 칭찬이라 봐줬다. 하하. 솔직하게 말해주는 선후배들이 많아 오히려 자극이 된다. 어머니와 아내도 늘 내 중계를 본다. 그런데 주로 중계가 새벽 시간대라 소리 줄여놓고 그냥 자더라. 그래도 TV를 켜놓고 있는 게 어딘가. 완전 '땡큐'다."

    -선수와 지도자 출신으로서 해외축구를 해설하는 건 도전이다.

    "장지현·서형욱 등 비 선수 출신 해설위원보다 정보력이 부족해 실수할 가능성이 크다. 자칫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별로 신경 안 쓴다. '선수 출신은 경기상황에 대해서만 해설한다'라는 편견을 깨뜨리고 싶어 선수에 대한 분석도 많이 한다. 이름만 잘 부르면 될 텐데…."

    -위기도 있었다.

    "2007년 맨유 해설을 한 뒤에 욕을 너무 먹어 그만 두려고 했다. 사실 준비를 많이 못했다. 그래서 신승대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에게 자료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내가 준비한 게 아니라 잘 안되더라. 직접 준비하지 못한 내 잘못인데 그때는 남탓만 했다. 그러다가 운명의 팀 아스널을 만났다."

    -아스널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신승대 아나운서가 격려해주고 도움을 줬다. 또 당시 PD가 아스널 경기만 전문적으로 맡아보라고 하더라. 그때부터 해외축구 해설에 재미를 붙였다. 아스널은 원래 좋아하던 팀이다. 선수 시절 가고 싶은 팀이었다. 그래서 더 신이 나서 해설을 했다. 수비수 바카리 사냐를 자주 칭찬해서 '사냐 아빠'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런데 요즘은 바이에른 뮌헨과 바르셀로나라 끌리더라. (아스널에 대한) 배신은 아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선수 시절은 화려했다.



    "기억하는가. 캬~. 내가 이청용(볼턴)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국내 최초로 '접기' 드리블 기술을 했다. A대표팀에서 29경기밖에 뛰지 못했지만 12골이나 넣었다. 알짜배기 선수였다는 증거다. 그리고 1993년 K리그 MVP다. 너무 내 자랑만 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잘했는데. 으헤헤."

    -프랑스 리그 로리앙에 진출했는데 실패했다.

    "안 좋은 기억이다. 나는 기술 축구를 하는데 프랑스는 몸싸움이 거칠더라. 그래서 적응에 실패했다. 4경기 뛰고 6개월 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전에 중계하다 보니 그때 로리앙 감독님이 그대로 팀에 있더라."

    -크리스티앙 구르퀴프 감독 말인가.

    "맞아. 갑자기 추억이 떠올라 울컥한다. 구르퀴프 감독님이 참 내게 잘해줬다. 호텔 생활을 할 때 자신의 집을 내줘서 나를 재워줬다. 그때 감독님 아들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요앙 구르퀴프(리옹)다.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지도자로서는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해설을 한다고 해서 지도자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설을 발판으로 지도자를 할 생각은 없다. 때가 되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욕심 부리지 않겠다. K리그 부산 코치와 여자축구 충남 감독직에서 실패를 겪었다. 한 번쯤 기회가 더 오지 않겠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해설. 욕심 나지 않나.

    "선수 시절 월드컵은 두 번 가봤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벤치에 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멕시코전을 앞두고 연습을 하던 도중 머리에 공을 맞아 정신을 잃은 뒤 쭉 부진했다. 인생은 삼세번이지 않나. 2014년 브라질월드컵은 해설위원으로 가고 싶다. '막걸리 해설'이 아닌 고급스러운 '양주 해설'을 보여주겠다."

    김환 기자 hwan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