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9년 차’ 베테랑 김해숙 “카메라 앞에 서면 아직도 긴장돼”

‘데뷔 39년 차’ 베테랑 김해숙 “카메라 앞에 서면 아직도 긴장돼”

[일간스포츠] 입력 2013.10.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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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숙(58)은 요즘 가장 바쁜 배우로 통한다. 영화 '깡철이'(안권태 감독)와 '소원'(이준익 감독)이 2일 동시에 극장에 걸리고, KBS 2TV 주말극 '왕가네 식구들'과 SBS 월화극 '수상한 가정부'에도 출연중이다.

엄마 역을 주로 맡는 중견배우라 겹치기 출연이 많은게 당연하다는 편견은 금물. 김해숙이 선보이는 캐릭터는 '흔해빠진 엄마'가 아니다. 현실적인 인물을 표현해 공감대를 형성하는건 기본이고 매 작품마다 다른 방식의 해석을 곁들여 '새롭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특히 영화에서는 드라마에서 볼수 없는 임펙트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 극에 힘을 실어준다. '도둑들'의 '씹던 껌'이 그랬고 '박쥐'의 라여사도 마찬가지였다. 신작 '소원'에선 딸의 사고 이후 충격을 받고 자살시도를 하다 두 다리를 잃은 아동 정신과전문의를 연기했다. 성폭행 피해아동을 친딸처럼 보살펴주는 인물이다.

'깡철이'에서는 당뇨병과 치매를 앓고 있는 유아인의 엄마 순이를 연기하며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어린 관객들의 입에서까지 '그 아줌마 연기 쩐다'는 말이 나오게 만들 정도로 농익은 실력을 과시했다.


-요즘 가장 '핫'한 배우다.

"자다가도 방긋방긋 웃는다.(웃음) 단, 촬영을 마친 영화 두 편이 의도치않게 같은날 개봉돼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드는건 사실이다. 그래도 매번 영화로 많은 관심을 받게 돼 감사할 따름이다. 어쩌다보니 드라마도 두 작품에 동시에 출연하게 됐다. '수상한 가정부'는 연출자 김형식PD와 오래된 사이라 자연스레 같이 하게 됐다. 김PD가 조연출을 할때부터 같이 호흡을 맞췄던 사이다. '왕가네 식구들'도 8년만에 문영남 작가와 호흡을 맞추게 돼 의미가 남다르다."



-'깡철이'에서는 치매에 당뇨병까지 걸린 엄마를 연기했다.

"치매환자 연기를 위해 자료를 뒤지니 증상의 종류만 100가지가 넘더라. 그래서 치매 증상을 표현하는게 아니라 극중 강철의 엄마 그 자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만약 내가 10년 또는 20년 뒤에 강철의 엄마와 같은 환경에 처한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고 관객의 공감을 끌어낼수 있는 연기를 하려고 신경을 기울였다. '깡철이'는 화려하거나 요란한 구석이 없고 흥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특정 코드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힐링'이 되는 영화다."

-'해바라기'의 김래원, '우리 형'의 원빈, '깡철이'의 유아인까지 유독 극중 '아들' 복이 많은 편이다.

"래원이와 빈이는 참 좋아하고 아끼는 후배다. 여기에 유아인까지, 내가 참 복이 많다. 처음엔 아인이를 보고 '어린 애와 어떻게 호흡을 맞춰야하나'라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만나보니 굉장히 생각이 깊고 의젓하더라. 거기다 귀엽기까지 하다. 내가 원래 젊은 사람들에게 말을 잘 안 놓는데 부모 자식간의 호흡을 맞출 경우엔 일부러 '엄마'라 부르라고 시킨다. 그러면서 많이 친해졌다."

-유아인의 친어머니가 자신의 아들과 극중 어머니 김해숙의 관계를 질투했다는 말이 있다.

"나도 그 말을 듣고 괜히 미안하더라.(웃음) 앞서 아인이와 함께 영화 '반창꼬' VIP 시사회 초청을 받고 함께 팔짱을 끼고 들어간 적이 있다. 그냥 들어가기 머쓱해서 그랬던건데 그걸 보고 아인이 어머님께서 '넌 내 팔짱은 안 끼면서 밖에서는 다르게 행동한다'며 섭섭해했다더라. 그 마음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집에서는 어떤 엄마인가.

"집과 촬영장에서의 생활을 칼같이 구분하는 편이다. 촬영장에선 집안 일에 신경을 끊고, 집에 돌아오면 완벽한 가정주부로 돌아간다. 자신있게 말하는데 나름 요리도 잘한다. 두 딸이 각각 서른다섯, 서른여섯이 됐다. 일에 빠져 결혼도 안 했다. 촬영후 늦게 돌아가도 어떻게든 두 딸이 먹을 것들을 챙기려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며 괜히 화가 난 적도 있다.(웃음) 요즘엔 괜히 딸들의 결혼문제가 신경쓰여 주변에 '좋은 사람 없냐'며 어필을 하기도 한다. 너무 심하면 없어보일까봐 조심스레 물어보고 있다."



-소위 '액티브 시니어'의 대표적인 인물로 불린다.

"고맙다.(웃음) 그런 수식어보다는 그저 열심히 도전하는 모습을 좋게 봐준 것 같다. 항상 도전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건 사실이다. 주로 엄마 역할을 맡고 있지만 똑같은 연기는 보여주지 않으려한다. 특별출연 개념으로 길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을 연기하더라도 나를 선택해준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름대로 고충도 많았지만 어쨌든 묵묵히 걸어온 내 행보가 좋게 보여지는 것 같아 기분좋다. 뒤늦게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걷고 '천만배우'까지 됐다. 이 나이대 배우들에게 잘 들어오지 않는 캐릭터들까지 연기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려 노력중이다."

-데뷔 39년차다. 이 정도면 연기에 관해서는 통달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아니다. 매번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머리 모양 하나부터 목소리까지 어떻게 표현할지 바짝 신경을 쓴다. 그러다보니 항상 카메라 앞에 설 때면 떨림을 느낀다. 촬영 초반부에는 긴장감 때문에 NG도 종종 낸다."

-JTBC '무자식 상팔자'에 출연할 때 김수현 작가에게 연기와 관련해 지적도 받았다고 들었는데.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배우로서 작가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부끄러웠다. 오히려 리딩현장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을때 그걸 보고 나를 포함한 출연자들이 함께 신나게 웃었다. 김수현 작가가 매번 쓴소리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대본리딩 과정도 그렇게 무시무시한 분위기로 진행되는게 아니다."

-복잡한 마음이 들때 '힐링'을 위해 찾는 곳이 있나.

"촬영장이다.(웃음) 어떻게 보면 슬픈 이야기이기도 한데 실제로 나는 일할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 이게 불행이 아닌가 싶었는데 이 나이에 배우로서 좋은 역할을 얻을수 있고 또 집에서는 딸들과 행복하게 지낼수 있으니 더 바랄게 없다."



Tip. '깡철이'는 어떤 영화?

'깡철이'는 힘겨운 20대를 보내는 청년 강철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치매와 당뇨 합병증을 앓고있는 엄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강철의 모습이 코끝을 시큰하게 만든다. 유아인이 강철을 연기하며 엄마 순이 역의 김해숙과 호흡을 맞췄다.

기본 줄거리만 보면 우울하고 지루한 드라마가 떠오를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신파적 설정으로 억지눈물을 짜내려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밝은 톤을 유지하며 관객의 부담을 덜어준다. 강철의 캐릭터는 매사 긍정적이고 엄마 순이도 코믹한 의상에 어린아이같이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강철이 뒷골목 조직폭력배 조직에 얽혀들면서부터는 느와르를 방불케하는 긴장감과 속시원한 액션이 터져나오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건 강철과 엄마 순이의 관계묘사다. 연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옥신각신하며 모자간의 정을 나누는 모습을 통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자아낸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유아인과 김해숙의 탄탄한 연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김밥신'과 '버스신' 두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관객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힐링'이란 말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유아인의 전작 '완득이'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깡철이'에도 호감을 가질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해숙의 '명품연기'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정지원 기자 cinezzang@joongang.co.kr
사진=김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