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박찬호 키드] ② 유턴한 박찬호 키드, 그들이 남긴 것들

    [라스트 박찬호 키드] ② 유턴한 박찬호 키드, 그들이 남긴 것들

    [일간스포츠] 입력 2015.08.26 08:30 수정 2015.08.26 09:29
    글자크기
    글자크기 키우기 글자크기 줄이기
    24일 열린 2016 KBO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마지막 ‘박찬호 키드’ 선수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남태혁, 김동엽, 정수민, 나경민.


    '박찬호 키드(Kid)'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우상 '코리안 특급'처럼 되기 위해 2000년대 중후반 고교 졸업 후 태평양을 건넜던 이들은 2015년 현재 대부분이 국내 유턴했다. 이순철 SBSsports 해설위원은 "침체한 야구의 인기를 일으킨 세대들이 '박찬호 키드'였다. 척박한 생활을 견뎌내 성공한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제 박찬호 세대가 저물고, KBO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류현진 키드', '강정호 키드'가 나오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박찬호 키드'란 박찬호(42·전 한화)가 미국에서 시속 150㎞ 중반대 강속구를 던지며 승승장구하던 1997년 언저리에 야구를 시작한 세대를 말한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이들은 전국민의 스타로 떠오른 박찬호처럼 되기 위해 야구를 시작했다. 운동에 재능이 있던 전국의 어린이들이 모두 글러브와 배트를 들고 운동장과 골목에 모여들었다. KBO가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한데는 이들의 역할이 컸다.

    박찬호의 성공은 한국인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이후 박찬호를 동경한 많은 ‘야구 유망주’들이 미국행을 결심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아마추어들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추신수(33·텍사스), 송승준(35·롯데), 서재응(38), 최희섭(36·이상 KIA) 등은 1세대 박찬호 키드라 불린다. 이밖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선수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다. 나름대로 성취가 있었겠으나, 눈에 띄는 큰 성공을 일군 이는 추신수 정도였다. 낯선 문화와 고단한 현실을 뚫고 경쟁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후에도 미국행 러시는 끝나지 않았다. 올해 2차 드래프트에 지명된 4명의 선수가 거의 마지막 박찬호 키드였다. 2006년 미국에 진출했다가 2013년 한국 프로야구로 돌아온 정영일(27·SK)은 "올해를 끝으로 마지막 박찬호 키드가 모두 국내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지명된 선수들은 미국에서 이따금 만나 함께 식사를 하던 동생들이었다. 그중 내가 가장 맏이였다"고 말했다.

    ‘박찬호 키드’들 중 현재 메이저리그에 정착한 선수는 추신수 밖에 없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17시즌(1994~2010년), 일본 프로야구(2011년), 한국(2012년)까지 3개국 리그를 돈 뒤 현역 은퇴했다. 코리안 특급의 퇴장과 함께 그가 탄생시킨 소년들도 연어처럼 한국으로 오고 있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최근 강정호-류현진의 성공으로 고교 졸업 후 해외로 직행하는 것보다 KBO에서 검증을 거친 뒤 안전하게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아마추어들이 늘어날 것이다"고 말했다.

    서지영 기자

    ◇ ‘라스트 박찬호 키드’ 관련 기사

    [라스트 박찬호 키드] ① SK 정영일 “이제 아픔·슬픔 없이 야구만”

    [라스트 박찬호 키드] ② 유턴한 박찬호 키드, 그들이 남긴 것들

    ☞ 베이스볼긱 페이스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