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IS] '막장 리트머스 종이' 배우·PD·작가가 쓰는 '막장 감별법'

    [진단IS] '막장 리트머스 종이' 배우·PD·작가가 쓰는 '막장 감별법'

    [일간스포츠] 입력 2015.10.15 07:50 수정 2015.10.1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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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동생과 형수의 불륜을 다룬 이야기'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즉시 '막장'이라고 불릴만한 이야기이지만 이는 셰익스피어의 명작으로 불리는 '햄릿'의 줄거리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 역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비극적 운명'이라는 내용만 보면 2015년 기준으로는 '막장'이라고 불릴만 하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특정 드라마가 '막장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는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오랜시간 회자된 명제처럼 경계선이 모호해 정답이 없다. 결국 주관적인 문제이지만 대략의 이정표조차 없는 현실에서는 '막장'이 칭송받고 '명작'이 폄하되는 불상사가 초래될 수 있다. 

    현업에 종사중인 사람들의 의견은 어떨까. 드라마의 최전방에서 뛰고 있는 배우와 PD, 작가, 평론가들이라면 이정표로 삼을 만한 '막장 구별법'을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
     
    ▶ <배우> 이규한 "출연 배우인 나조차 이해가 안되면 막장"

    SBS '애인있어요'는 방송 전 제작발표회부터 '막장 논란'에 휩싸였다. '기억을 잃은 여자가 죽도록 증오했던 남편과 사랑에 빠진다, 아니, 불륜한다'다는 제작진 측의 줄거리가 먼저 알려졌기 때문. 이후 불륜에 당당한 박한별(강설리)과 흔들리는 지진희(최진언), 결국 기억을 잃고마는 김현주(도해강)의 복잡한 러브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뒷목'을 잡는 시청자들이 늘어나는 상황. 출연배우들은 '막장'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 8월 제작발표회 현장에 참석한 김현주·지진희·박한별·이규한 등 주연 배우들은 '우리 드라마는 막장이 아니다'라며 펄쩍 뛰었다. 이중 이규한은 "배우가 드라마를 '알고 찍으면' 막장이 아니다"라며 "작품을 하다보면, 배우인 나조차 상황과 대사를 이해를 못하겠음에도 '그냥 빨리 찍자'라고 생각하면서 촬영한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이 바로 '막장'인 셈인데, '애인있어요'는 어렵지만 모든것을 이해하고 찍고 있기 때문에 막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22.4% (닐슨코리아·전국기준)의 높은 시청률로 종영한 MBC '여왕의 꽃' 역시 '막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드라마이다. 주인공 '레나정'역을 소화했던 김성령은 8월 진행된 인터뷰에서 '드마라 막장의 기준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드라마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이야기를 담는 것이고, 자연히 그 세상이 '막장'인 정도가 자연스럽게 드라마에도 반영된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에 이런일이'나 '실제상황',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라. 요즘 세상이야말로 '막장'이다"라며 "그런면에서 '여왕의 꽃'과 레나정의 이야기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 충분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담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쪽대본'으로 점철된 드라마? 무조건 막장"

    한 방송사 드라마 PD는 모호한 '막장 구별법'에 대해 '쪽대본'과 '사전제작 비율'이라는 가시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쪽대본이란 결국 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의견과 여론의 흐름을 반영해 수정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이 경우 자연히 극이 중심축을 잃고 스토리는 '중구난방'이 되며 캐릭터는 마치 덕지덕지 붙은 음식점 종이 메뉴처럼 본래의 색을 잃게 된다"며 "이렇게 만들어진 드라마는 대부분 '막장'이 된다"고 말했다. 자극적인 소재나 반인륜적인 주제를 가진 드라마만이 막장이 아니라 드라마 제작 과정의 시스템이 막장을 만들수도 있다는 의미. 그는 "그런면에서 100%는 힘들더라도 최대한 사전 제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는 자극적이거나 시청률이 낮더라도 무게 중심이 확실한 '명작'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전했다.  

    PD는 아니지만 제작자 도전을 선언한 배우 이범수도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9월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쪽대본 드라마'을 두고 막장을 넘어 '졸속'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예를들어 내가 맡은 'A'역할이 'B'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악역인데, 어느날 쪽대본을 보니 'B는 A의 친동생'이라고 돼 있으면, 그 '간극'을 어떻게 갑자기 커버하겠나"라며 "만약 같은 '반전'이라도 배우가 미리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 장면 '전·후'로 미세하게 다른 연기를 선보였을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혼동이 있을때마다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정황을 물을 순 있겠나"라며 "결국 혼동이 쌓여서 흐름을 잃고 작품은 '졸속'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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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이금림 "막장인지 아닌지는 작가 본인이 잘 안다"

    이금림 한국작가협회 이사장은 '막장 드라마'에 대해 '시청률이 아무리 높아도, 또는 해외 시장에 판권이 불티나게 팔린다 해도 박수쳐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은실이'·'당신 때문에'·'푸른안개'등을 집필한 작가이기도 한 그가 말하는 '막장 구별법'은 무엇일까.

    그는 "'소재'에는 막장이 없다"고 단언한다. 이어
    "'사람 사는 일에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며 "하지만 그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의식에 주목하며 '막장'을 구별하는게 좋다. 누가봐도 시청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흥미 위주의 전달하고 있음이 보인다면 '막장 드라마'인 것이고, 자극적인 소재라도 그것을 통해 내면의 진지함을 비추며 고유의 메시지가 숨쉬고 있다면 교훈과 감동이 있다"고 말했다.

    이금림 이사장은 지난 6월 종영한 SBS '풍문으로 들었소'를 예로 들었다. 그는 "'두 미성년자가 임신을 해 아이를 낳는 소재'라고만 하면 '막장'이라고 분류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 소재를 사용해 '있는 집안'의 위선을 벗겨내고 그 속에 숨쉬는 허위 의식을 조명하려 했던 작가의 노력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나는 '막장'이라고 분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막장 구별법'이 결국은 주관적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사실 '막장인지 아닌지'는 그 드라마를 쓴 작가 본인은 정확히 알 수 있다"며 "책임 의식을 가지고 양심을 담은 드라마를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평론가> 정덕현 "뻔한 클리셰의 자극적 구성? 100% 입니다"

    이금림 이사장과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 정덕현 문화 평론가는 "드라마란 '약속'이 느껴져야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초반 캐릭터 설정 이후 정해진 흐름이나 개연성을 포기한채 스토리를 '자유롭게' 풀어내며 의도적인 자극을 추구한다면 막장"이라며 "보통 막장 드라마들은 뚜렷한 '흐름'이 느껴지지 않고 '뻔한 클리셰의 자극적인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또한 "드라마의 소재만을 가지고 막장을 구분해서는 안된다"며 "불륜·동성애 또는 근친상간을 소재로 하더라도 그 목적이 '자극'이 아닌 '메시지 전달'에 있다면 막장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박현택 기자 ssal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