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제공
2012년 축구 기자로 근무하며 황선홍 포항 감독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올스타전을 앞두고 마련한 특별 인터뷰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선수 시절 팬들에게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한국 축구 선수가 아닐까'라고 묻자 황 감독은 "어쩔 수 없다. 골을 넣지 못하는 스트라이커의 숙명인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1990년, 94년, 98년, 2002년 월드컵 대표로 출전한 황선홍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골을 넣기 이전까지는 박수보다는 비난에 더 익숙했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예선 탈락할 때마다 골을 넣지 못한 황선홍 감독이 많은 책임이 뒤따랐다. 스트라이커였기에.
2015년 한국시리즈. 4차전까지 두산이 3승1패로 앞서 있다. 삼성은 이제 벼랑 끝에 서 있다. 한 번만 더 지면 5년 연속 통합 우승은 물거품이 된다. 한국시리즈에 앞서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 세 투수가 해외원정 불법 도박 혐의로 엔트리에서 빠지면서 전력이 약화됐다. 세 선수는 엄청난 비난 여론을 받았다. 한국시리즈가 진행되는 지금, 삼성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선수는 '4번타자' 최형우다.
최형우는 올 시즌 4번타자로 144경기 전경기 출장하며 타율 0.318 33홈런 123타점 94득점 출루율 0.402 장타율 0.563을 기록했다. 정규시즌 우승팀 4번타자로 손색이 없는 성적이다.
삼성이 정규시즌 우승을 5연패하는 동안 최형우는 4번타자로서 3할대 타율과 137홈런 516타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0.320 5타점 1득점, 2013년 한국시리즈에선 타율 0.308 1홈런 1타점 4득점, 2012년 한국시리즈 타율 0.136 2홈런 9타점으로 제 몫을 해냈다.
그런데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초라하다. 4차전까지 타율 0.118(17타수 2안타) 0타점 0득점이다. 2차전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 3차전 2루타 한 개 뿐이다. 찬스에선 번번이 무기력하게 물러났다. 제 컨디션이 아닌지 공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헛스윙, 무기력한 내야 뜬공 등 내용도 안 좋다. 상대 투수의 공에 노림수도 통하지 않는 듯 하다.
4차전에서 최형우는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1회 나바로의 병살타로 2사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최형우는 초구에 어정쩡한 스윙으로 3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3회는 삼진 아웃. 특히 3-4로 역전당한 6회 무사 1·2루 찬스에서 2루수 인필드플라이로 물러난 것이 아쉬웠다. 8회 2사 1루에서도 힘없는 2루 땅볼로 물러났다.
1차전에선 삼진-3루수 파울플라이-2루수 플라이-3루수 플라이-2루수 땅볼로 5타석에서 모두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타구로 아웃됐다. 2차전은 1회 2사 2루에서 3루수 플라이, 4회 1사 후 중견수 플라이, 7회 선두타자로 나서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0-6으로 패색이 짙은 9회 1사 후 첫 안타를 때렸다. 3차전은 1회 1사 1루서 포수 땅볼, 4회 선두타자로 3루수 플라이, 6회 2사 1루에서 좌선상 2루타, 8회 2사 1루에서 2루수 땅볼이었다.
1~4차전 17타석 중 안타 2개, 삼진 2개, 외야 플라이 2개를 제외하곤 타구가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웃된 것이 모두 11개나 된다.
4번타자는 못 치다가도 한 방으로 반전을 이루는 자리다. 매 타석 안타를 기대하기 보다는 상대 투수에 부담을 주고, 결정적인 한 방으로 흐름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승엽도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6차전 9회 마지막 타석을 앞두고 타율 0.100(20타수 2안타)로 부진했으나, 9회 동점 스리런 홈런을 치면서 영웅이 됐다.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무기력하면 4번타자에 모든 시선과 비난이 쏠린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채태인도 0.154, 박석민도 0.214, 나바로도 0.200으로 부진하지만 최형우는 4번타자이기에 부진이 더욱 도드라진다. 타구 내용도 좋지 않다.
최형우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타선이 무기력하자, 다른 타순과 포지션은 바꾸면서도 4번과 중심타선은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류 감독는 30일 4차전 패배 후 "내일(5차전도)도 최형우가 4번을 친다. 우리 팀 4번타자를 믿지 못하면 누가 믿겠나. 부진하다고 4번타자를 빼는 건 안 된다"고 말했다.
최형우가 끝까지 침묵하며 비난 세례를 온몸으로 받을지, 5차전에서 회심의 일타를 보여줄지. 결과가 어떻든 4번타자에게 주어지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용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