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①] 황영조 ”한국 마라톤 30년 전으로 퇴보, 20년 뒤도 금메달 어렵다”

    [긴급진단①] 황영조 ”한국 마라톤 30년 전으로 퇴보, 20년 뒤도 금메달 어렵다”

    [일간스포츠] 입력 2016.06.22 06:00 수정 2016.06.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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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마라톤 수준은 30년 전으로 퇴보했습니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46)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국가적인 관심과 시스템 정비, 투자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10년 아닌 20년 뒤도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뒤따랐다.

    최근 한국 육상계에 경사가 있었다. 남자 멀리뛰기 '간판' 김덕현(31·광주광역시청)이 지난 11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메스 라이드 라 미팅 2016’ 결선에서 8m22를 뛰며 자신의 한국기록(8m20)과 리우 올림픽 기준 기록(8m15)을 통과했다. 2015년 세단뛰기 종목에서도 A기준 기록(16m85)을 달성한 그는 한국 육상 최초로 두 개 종목을 리우 올림픽에서 동시 참가하게 됐다.

    모처럼 날아든 반가운 소식에도 불구하고 한국 육상은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김덕현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리우 올림픽에 출전을 확정한 선수는 남자 100m 김국영(25·광주광역시청)과 남자 높이뛰기 윤승현(22·한국체대)뿐이다. 

    한때 금·은메달리스트를 배출한 마라톤은 '전멸' 수준이다. A기준 기록이 느슨한 마라톤은 약 4명의 선수를 리우에 보낼 예정이지만 메달권 안에 드는 선수는 없다. 지난 17일 서울 올림픽공원 인근에서 만난 황 감독은 "세계기록과도 10분가량 뒤져 있다. 마라톤에서 10분 차이는 엄청난 것"이라며 "2시간12분대는 30년 전 마라톤을 막 시작한 선수가 내던 기록"이라고 쓴소리 했다.
      


    ◇황영조·이봉주는 '돌연변이'일뿐


    한국은 지난 1990년대 마라톤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이어 4년 뒤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이봉주(46)가 은메달을 따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한국 마라톤은 더이상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하지 못했고, 세계 기록과도 멀어졌다. 황 감독은 "체계적인 투자와 시스템 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 비인기 종목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당시 육상 유망주들이 마라톤계에 몰려들었어요. 황영조·이봉주효과를 타고 일어난 '붐' 현상을 꾸준하게 이어가려면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육성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인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죠. 그냥 막연하게 '투자 안해도 제2,3의 황영조와 이봉주가 나타나겠지'한 거에요. 우린 그냥 '돌연변이'였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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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마라톤의 영웅들, 황영조 - 이봉주 ]


    투자 없이 성과를 기대하는 건 요행을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 지난 1980~1990년대 한국 육상계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선수들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마라톤에 매달렸다. 지금은 생존을 위해 뛰는 시대가 아니다. 선수들의 정신력은 느슨해진 반면 현장 여건은 여전히 척박하다.

    한국에 있는 육상 실업팀 중 전문 마사지사나 전담 주치의를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선수들은 잠들기 전 서로의 다리를 주무르는 형편이다. 부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실력 있는 선수들이 대회에 나서지 못하고, 경쟁을 통한 기록 단축도 하지 못한다.

    "21세기인데 관리 시스템은 80년대만도 못합니다. 지금 환경에서는 세계적인 마라토너를 절대 키울 수 없습니다. 김연아(26)와 박태환(27)이 스타가 되면서 비인기 종목이었던 피겨와 수영이 인기라죠. 하지만 적극적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마라톤처럼 될 겁니다."

     
    ◇체전용 순위싸움이 아닌 세계와 기록경쟁 해야


    현재 마라톤 세계기록은 데니스 키메토(32·케냐)가 2014년 9월 베를린마라톤에서 작성한 2시간2분57초다. 한국은 시즌 랭킹 1위도 2시간12~13분대에 그친다. 현장 날씨와 코스, 컨디션 변수를 모두 따져도 마라톤에서 10분 차이란 사실상 선두권 그룹에서 벗어난 수준이다. 황 감독은 "2시간12분대 기록은 1980년대 나와 이봉주같은 연습생들이 얼떨결에 뛰어서 나왔던 것"이라고 했다.

    세계와 경쟁하지 않고 전국체전 같은 국내대회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무시하지 못한다. 국내 성인 육상팀 상당수는 도·시·군·청에서 꾸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국내 체전 등에서 얼마나 많은 메달을 따느냐가 중요한 이슈가 됐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꾸기보다 당장 눈 앞의 성과를 내야 그나마도 운영될 수 있어서다.

    "물론 지자체가 운영하는 육상팀의 순기능도 상당합니다. 마라톤은 1년 열 두 달 내내 뛰어야 하는 종목인데 지금은 전국체전에 앞서서 '반짝 훈련'을 하고 있어요. 순위 싸움이 아닌 세계 기록과 경쟁해야 할 시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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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하루빨리 해소돼야 한다. 최근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육상 대신 야구나 축구, 농구 등을 권한다. 프로선수가 됐을 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달리기'는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다. 재능있는 육상 꿈나무가 육상이 아닌 타 종목으로 빠져나가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당연한 현상이에요. 육상은 이른바 '대박'을 낼 수 있는 종목은 아니죠. 은퇴 뒤 진로도 매우 제한적이에요. 지금 초·중·고등학교 육상팀 코치의 처우를 보세요. 최소한의 수준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도자의 역량이 뛰어나야 유망주를 키울 있는데, 누가 이 월급을 받고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황 감독에게 '언제쯤 마라톤에서 금메달이 나오겠는가'라고 물었다.

    "케냐가 우리나라처럼 도태될 때쯤…. 지금 상황이 지속한다면 20년 뒤에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서지영 기자 

    * 일간스포츠는 2회에 걸쳐 위기의 한국 마라톤을 긴급진단 합니다. 1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에 이어 2회에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리스트 이봉주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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