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선진학교 ‘첫 승’ 의미와 프로야구에 던지는 메시지

    글로벌선진학교 ‘첫 승’ 의미와 프로야구에 던지는 메시지

    [일간스포츠] 입력 2016.07.27 06:00 수정 2016.07.2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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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비가 시작되면 더그아웃에 남은 선수들은 13명뿐이다. 감독도 없다. 공격할 때는 코치 두 명 모두 코치 박스에 나가있다. 그라운드 위 선수들은 '야구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다'는 선입견과 싸운다. 

    한국의 엘리트 고교야구에서 경쟁하기엔 열악한 조건이다. 이런 팀이 메이저 대회에서 승리를 거뒀다. 제50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경북 문경의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의 값진 성취다.

    글로벌선진학교는 7월 20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대회 1회전에서 백송고를 10-0, 5회 콜드게임으로 이겼다. 2학년 선발 투수 공기태가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타선은 3-0으로 앞선 5회, 안타 6개를 몰아치며 7득점을 올렸다. 3학년 김승준이 3타수 2안타 3타점 2득점을 기록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2014년 공식 창단(고등부) 이래 전국대회에서 거둔 첫 승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백송고는 전반기 주말리그(경기A)에서 5승 1패로 1위를 거둔 팀이다. 반면 글로벌선진학교는 전반기(경상A) 4패 뒤 거둔 1승이 올 시즌 유일한 승리다. 후반기에도 5패만 당했다. 대회 전부터 최약체로 평가받았다.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도 "아직 프로에 입단할 선수는 찾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팀 역사가 짧아서만이 아니다. 글로벌선진학교는 기독교 재단이 세운 국제형 대안학교다. 커리큘럼도 미국식이다. 국어, 국사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 해외 대학 진학을 목표로 입학하는 학생도 많다.

    야구부원도 '학업과 운동'을 철저하게 병행한다. 훈련은 오후 3시에 시작해 3~4시간 동안만 진행된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야구를 즐기도록 돕는다. 폭력과 폭언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기존 엘리트스포츠 시스템을  탈피하려는 의지가 크다. 야구부원 중엔 선수가 아닌 다른 진로를 택한 선수도 있다. 학교는 "야구 선수는 물론 야구 행정가, 스포츠 전문 변호사도 키울 수 있도록 운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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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를 제쳐놓고 야구에만 매진해도 프로 입단은 '하늘의 별 따기', 대학 진학도 어렵다. 냉정한 현실을 잘 아는 이들에게 글로벌선진학교의 야구부 운영 방침은 이상론으로 들릴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야구부 운영은 어렵다. 부원 수에서도 알 수 있다. 50명이 훌쩍 넘는 서울 시내 명문 고교 야구부의 절반 수준이다. 3학년이 13명, 1·2학년은 9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중학부는 고작 2명이다. 당장 내년엔 대회 출전이 어려울 수 있다. 부원 다수가 학교 방침대로는 프로 선수가 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전학을 갔기 때문이다.

    감독도 없다. 창단부터 선수들을 지도하던 권혁돈 중등부, 김혁섭 고등부 감독이 최근 팀을 떠났다. 학교는 최근 야구부 지원 확대를 약속했다. 하지만 신입 부원 모집조차 쉽지 않다. 한국일 고등부 코치는 "자기 포지션이 아닌 포지션에 뛰어야 하는 선수가 생긴다. 당연히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안타까워했다.

    단시간에 좋은 성적을 기대하긴 힘든 조건이다. 첫 프로 입단 선수 배출도 기약할 수 없다. 하지만 전국대회 입상과 프로선수 배출만이 고교 야구부의 평가 기준이 돼야 할까. 글로벌선진학교는 학생의 인생을 두고 모험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선수 부모들도 같은 생각이다. 3학년 투수 김정훈은 고심 끝에 미국 대학 진학을 결정했다. 어머니 김영희씨는 "아들이 야구를 하면서 재활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공부를 병행했기 때문에 선수 외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수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졸업반 때 냉혹한 현실에 부딪힌다. 대학 진학과 프로 입단에 성공해도 성공은 여전히 멀리 있다. 일단 야구를 포기하면 다른 진로를 탖기가 어렵다. 하지만 글로벌선진학교는 학생 선수에게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학생들은 열정과 현실 사이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다. 일반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선수 대다수는 스카우트, 행정가, 재활 전문가 등 스포츠 관련 직업을 목표로 삼은 선수들이 많다. '고교 선수' 시절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적성을 알고 진로를 정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절실하게 야구를 하지 않는다'는 편견도 받는다. 하지만 선수들의 열정은 다른 학교 선수들과 다르지 않다. 부모들은 입을 모아 "선수 대부분 마음 속엔 프로 선수를 향한 꿈이 있다"고 했다. 

    '풍운아' 최향남이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는 지난 1월 LG에서 뛰던 시절 한솥밥을 먹던 김혁섭 전 감독의 부탁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순수한 열정에 감명을 받았다. 올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도움을 주려 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대회에 감독 대행을 맡았다. 정식 지도자가 아니라 경기 중 더그아웃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험난한 도전을 선택한 선수도 있다. 외야수 이승호는 "무조건 야구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백정훈 KIA 스카우트가 "눈에 들어온다"며 "당장 프로는 힘들겠지만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 선수다. 아버지 이정일씨는 "아들이 야구 선수를 꿈으로 삼았다"며 "실력은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려는 마음이 크더라. 졸업 후에도 야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고 전했다. 외야수 김승준도 "내 목표는 프로야구 선수다. 정확히는 신고선수 입단이 목표다. 지금은 부족하겠지만 꼭 프로 무대에 서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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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선진학교의 운영 방침은 학원 야구의 체질 개선을 이끌 수 있는 사례가 되고 있다. 성적도 나아지고 있다. 지난해 7전 7패에 그쳤지만 올해는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2승을 거뒀다. 권위 있는 대회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값진 이정표를 남겼다.

    야구부 창단을 물밑에서 지원한 허구연 KBO 야구발전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배 대회에서의 첫 승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면서도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성공 사례가 나오면 프로 지향 일변도인 현재 시스템에도 변화를 시도하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며 첫 승에 의미를 부여했다. 

    최근 한국 야구는 선수들의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도박, 승부조작 파문에 시달리며 팬들의 신뢰를 잃었다. 이 점에서 글로벌선진학교의 첫 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야구부라는 좁은 세계에 갇히지 않고 지식과 교우 관계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

    허 위원장은 "선수들이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이유 중 하나가 인간 관계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라며 "정상적인 학원생활에서 좋은 친구, 스승을 곁에 둘 수 있다. 현재 시스템은 그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기능이 뛰어나고 돈을 많이 버는 선수는 나와도 '존경받는 스포츠맨'이 만들어지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올해의 도전은 24일 멈췄다. 글로벌선진학교는 대통령배 2회전에서 만난 강원고와의 경기에서 7-3으로 패했다. 안타는 상대팀보다 더 많이 쳤다. 하지만 잔실수가 많았다. 경기 뒤 최향남 대행은 "그래도 우리 학생들이 정말 대견하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몇몇 선수는 목동구장을 떠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도전은 끝이 아니다. 다음 대회인 봉황대기가 있다. 김승준은 "1회전에서 콜드게임으로 패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 하지만 다음 대회 전망도 밝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팀보다 진실한 경기를 보여주겠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