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②] CPBL 승부조작 중개자, ”대만 자금, 한국으로 흘러갔을 것”

    [르포②] CPBL 승부조작 중개자, ”대만 자금, 한국으로 흘러갔을 것”

    [일간스포츠] 입력 2016.09.02 07:00 수정 2016.09.0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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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프로야구는 올해 4년 만에 승부조작 사건이라는 현실과 마주쳤다. 2012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미 현역 선수 한 명은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전·현직 야구선수 가운데 경찰 수사 대상은 더 있다. KBO리그에 승부조작은 한 번의 시련으로 그치지 않았다. 세 번째, 네 번째 사건이 이어질지 모른다는 은밀한 공포가 프로야구에 퍼져 있다. 

    일간스포츠는 한국프로스포츠협회와 함께 프로스프츠 승부조작에 대한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국내외 사례를 추적해 승부조작의 실체와 심각성을 알리고, 대처 방안을 고민하기 위해서다. 일간스포츠 특별취재팀은 8월 대만을 찾았다. 한국보다 앞서 승부조작 사건을 겪었고, 프로야구가 존폐 위기까지 몰린 나라다. 대만의 경험에서 한국 야구가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

     

    ※르포①에서 이어집니다..

    - 승부조작에 가담한 시점은 언제였나.

    "현역 프로야구 선수로 뛰던 1990년대 중반에 몇 차례 단발성 조작을 시도했다. 은퇴 뒤엔 확실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승부조작은 '설계'를 하는 사람이 있다. 설계자의 사주를 받아 몇몇 후배 선수를 포섭했고, 승부 조작을 했다. 내가 참여한 방식은 몇 가지가 있다. 팡수이(放水), 화이트글러브, 랑펀(讓分) 등이다."
     
    - 방식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

    "팡수이는 경기에서 일부러 지는 방식이다. 혼자서는 안 된다. 투수·포수·내야수가 필요하다. 최소 5명이 가담해야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팡수이에선 투수가 가장 중요하다. 배당금도 많이 가져간다. 보통 투수가 100만 위안(현재 환율로 약 3500만원), 야수가 30만~50만 위안을 챙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례 중에선 한 판에 무려 800만 위안(약 2억8300만원)을 가져간 선수도 있다.  

    화이트 글러브는 2~3명이 공동 모의를 해서 일부러 실수를 저지르는 방식이다. 실책을 저지르는 선수를 맞히면 베팅 금액에 배당율을 곱한 금액을 받는다. 야수를 포섭해 실책을 하도록 주문했다.

    랑펀은 상대에게 고의로 점수를 주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면 약한 팀이 강한 팀을 2점 차 이상으로 이기는 데 베팅을 한다. 배당률이 높기 때문에 역배당이라고 한다. 강팀 선수를 매수해 고의로 점수를 주는 설계를 한다. 이 방식은 배당률이 높아 가져갈 수 있는 돈이 크다. 그래서 CPBL에서 자주 실행됐다. 그러나 지금은 선수 매수가 어렵고, 위험해서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 설계자는 어떤 인물인가.

    "폭력조직의 두목급으로 보면 된다. 승부 조작에 가담한 선수는 정확한 설계 방식을 모른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어진 업무만 할 뿐이다. 설계자와 중개자는 모두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에 누가 잡혀가도 탈이 없도록 설계가 돼 있다. TV 중계가 되는 경기일수록 판돈이 컸다고 한다. 분명한 건 모든 시작은 '설계'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설계자의 방식을 알아야 경기에서 조작 방법을 알 수 있다. 설계 방식을 모르면 연루된 선수나 중개자를 잡아도 전모를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다."
     
    - 경기 흐름에서 승부 조작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과거 A팀과 B팀이 맞대결을 했다. 각각 다른 조직에서 A팀과 B팀 선수에게 승부 조작을 지시했다. 그러면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목표를 달성하면 될 뿐이다. 그래서 정말 '추한' 경기를 했다. 보통 야구 팬이 봐도 '아! 이건 이상한 경기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보기 흉한 장면이 여러 번 나왔다. 두 팀 모두 엄청난 실점을 했고, 관중들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번 발을 들인 이상 조작을 포기할 수는 없다. 큰 돈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경기의 목적이 승리가 아니라 설계자의 의도 실현이 된다. 팀이 경기에 져도 돈을 딸 수 있다면 이긴 것이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설계 방식으로 돈을 따면 된다."
     
    - 대만 프로야구에선 오랫동안 승부조작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원인이 무엇인가.

    "선수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었다. 그러다보니 작은 유혹에 흔들리기 쉬웠다. 선·후배를 미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달에 5만 위안을 받는 선수가 대부분인데, '승부 조작에 성공하면 한 경기에 30만~50만 위안을 준다'고 한다. 1~2시간 경기를 뛰고 한 달 수입의 열 배 이상을 벌 수 있다고 하니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중개인 역할을 하면서 선수 포섭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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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 포섭 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선수의 특성 하나 하나를 파악해서 맞춤형 포섭을 한다. 술을 좋아하면 술을 많이 사준다. 여자를 좋아한다면 미녀를 붙인다. 포섭하고 숙주를 만든 뒤 조종을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포섭한 선수를 컨트롤하는 방법이다. 대부분 돈으로 해결했다. 폭력과 위협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최하의 수단이다. 조직 입장에서도 꺼리는 방법이다. 일이 시끄러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포섭한 선수가 마음이 흔들릴 경우 그냥 배제하는 방식으로 했다. 어떤 선수를 배제한 뒤에 '다른 승부 조작 판에도 낄 수 없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다시 조작에 참가하기도 하더라. 한 번 포섭된 선수는 배제를 해도 배신하거나 신고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자신도 가담했기 때문이다."
     
    - 승부 조작은 불법 스포츠도박과 연관돼 있는데.

    "과거 조직은 전화를 통해 승부 조작을 조종하고 지시했다. 위험성이 높은 만큼 대만 현지에 지하도박장을 만들지 않았다. 가까운 홍콩·마카오의 지하도박장과 연계해 베팅을 했다. 그러나 요즘엔 지하도박장은 없다고 보면 된다. 조직들은 컴퓨터로 온라인 도박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불법 스포츠도박이 가장 번성하던 때 지하도박장 베팅 규모는 CPBL 한 경기 당 대략 1억~2억 위안(약 35억원) 규모였다. 스바오 이글스가 연루된 1997년 '검은 독수리 사건' 때다. 지금은 적발 위험성이 커졌고, 서서히 없어지는 추세인 것 같다. 자연스럽게 업종이 전환되는 모습이다."
     

    - '업종 전환'은 무엇을 뜻하나.

    "검은 돈은 항상 규모가 큰 곳으로 이동한다. 중심 이동으로 생각하면 된다. 한국의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되나?"
     
    - 추산에 따라 다르지만 20조 원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만 조직의 자금이 한국으로 흘러갔을 확률이 높다. 도박에서 돈은 큰 판이 벌어지는 곳으로 흐른다. 그리고 불법 스포츠도박 외에도 조직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다."
     

    - (KBO리그 승부조작 사건을 설명한 뒤) 한국 프로야구에서의 승부 조작 방식은 어떤가.

    "2012년 승부 조작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고의 볼넷'은 투수 한 명을 포섭하면 쉽게 성공할 수 있다. 올해 승부조작에선 새로운 방법이 추가됐다. 승부조작에 걸린 돈의 규모가 커질수록 방법도 다양해진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CPBL의 초기 방식인 것 같다. 지금 단계에서 뿌리를 뽑지 않으면 승부 조작은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 승부 조작에 가담한 걸 후회하나.

    "물론이다.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서 많은 후회를 하고 있다. 함께 야구를 했던 후배들이 가끔 놀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곤, 나는 지금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 있다."
     
    한때 전도 유망한 선수였던 중개자는 2005년 승부 조작 혐의로 체포돼 법의 심판을 받았다. 본지와 인터뷰를 마친 뒤 중개자는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는 "내 이름과 사진, 음성 녹음이 절대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타이중(대만)=유병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