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랑]한국전쟁 당시 1023일간 피란수도였던 부산, 지금도 비루했던 당시의 흔적 곳곳에

    [You랑]한국전쟁 당시 1023일간 피란수도였던 부산, 지금도 비루했던 당시의 흔적 곳곳에

    [일간스포츠] 입력 2017.04.13 07:00 수정 2017.04.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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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은 다양한 여행 콘텐트를 갖고 있다. 부산 하면 해운대·광안리·국제시장 등을 먼저 떠올린다. 특히 해운대 '마린시티'는 한국의 맨해튼으로 불릴 만큼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이에 반해 보수동·광복동·아미동 등 원도심에는 산복 도로 주변으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몰려 살았던 곳이어서다. 피란민들은 풍찬노숙은 다반사였고 덮고 잘 거적때기 하나에도 감사했다. 이런 흔적들이 지금도 부산 곳곳에 남아 있고, 부산만의 여행 콘텐트가 됐다.
     
     



    한국전쟁 당시 모습이 그대로-임시수도기념관

    이제 한국전쟁도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청소년에게 언제 전쟁이 일어났냐고 물으면 모르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다음 세대에는 분명 잊혀진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

    부산에 가면 한국전쟁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우선 한국전쟁 때 부산은 '피란수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부산은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일까지, 한국전쟁이 1129일 이어지는 동안 1023일간 임시 수도였다. 지금의 대청로 주변으로 경무대(청와대)와 입법·행정·사법부 기관들이 들어서 '피란수도'의  모습을 갖췄다.


     



    그 흔적이 여전히 대청로 주변에 남아 있다. 임시수도기념관에 남아 있는 경무대는 1926년 지어진 경남도 지사 공관이었다. 피란 온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 그리고 비서들이 거주하면서 집무를 봤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다. 1층에는 응접실과 서재·내실·거실·식당·욕실 등을 재현해 놓았다. 경무대 뒤편에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관도 있다. 


     



    임시수도기념관에서 걸어 내려오면 피란 시절의 다양한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그 끄트머리에 동아대학교 부민 캠퍼스 내 석당박물관이 있다. 전쟁 전까지는 경남도청이었는데 피란수도였을 때는 정부청사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당시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내부는 완전히 바뀌었다. 다만 3층에만 서까래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차라리 캠퍼스 안에 전시돼 있는 전차가 당시를 더 떠올리게 한다. 1927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차인데 1952년 6월 19일부터 피란민들을 싣고 부산 시내 곳곳을 달린 전차다.
     

     



    죽은 자의 공간이 산 자의 집이 되다-아미동 비석마을

    '아미동 산 19번지.'

    대전에서 출발한 피란 열차를 타고 1950년 6월 29일 부산에 도착한 피란민들에게 주어진 종이에는 주소만 한 개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주소지는 다름 아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묻힌 공동묘지. 피란민들은 망연자실할 틈도 없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유골함을 파냈다. 6㎡(2평) 정도의 직사각형 묘곽 위에 골판지나 천막 등을 덮어 비바람을 피했다.  

    '무덤 집'에 살았던 피란민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대로 눌러살았다. 판자를 올리고 다시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해 세상에서 가장 작은 2평짜리 집을 만들었다. 화장실이나 수도는 언감생심. 방 하나에 부엌 하나가 전부였다. 마을에는 공동 화장실이 하나 있을 뿐이었고, 물은 몇 리를 걸어서 길어 와야 했다. 가수 김정구와 정훈희, 권투선수 장정구도 이곳에서 살았다.


     



    당시의 2평짜리 집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고 초라했다. 골목도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공동묘지를 만들 때 무덤과 무덤 사이에 난 길이 골목길이 되었다고 한다.  

    이 골목길을 따라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반듯한 돌이 눈에 들어왔다. 허름한 벽에도 주춧돌에도, 아니면 축대나 계단에도 반듯반듯한 돌들이 있었다. 한자가 적혀 있었고 그림도 새겨져 있었다.


     



    "일본인들의 무덤에 있었던 비석이거나 묘곽에 사용했던 돌입니다. 아미동 산 19번지가 '비석마을'로 불리게 된 것도 바로 이 돌 때문이지요." 안내를 맡은 부산여행특공대 손민수 이사의 설명이다. 

    어느덧 6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피란 왔던 사람들은 여전히 불편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당신들의 삶이 여기에 오롯이 남아 있고 그만큼 정이 들어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손 이사는 "영화배우 김윤석의 아버지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귀띔했다.
     
    ·사진=이석희 기자
     
    ◇ 여행정보=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차로 이동하거나 기차를 타고 가도 된다. 그러나 아미동 비석마을이나 임시수도기념관에는 주차장이 넉넉지 않다. 부산 지하철 1호선 토성역에 내려서 걸어가면 된다. 아니면 '피란수도' 관련 여생 상품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가이드의 자세한 안내도 받을 수 있다. 어른 2만5000원, 어린이 1만5000원. 부산여행특공대 070-4651-4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