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②]안판석 PD, 후반부 손예진 母 비중 놓치지 않았던 이유

    [단독인터뷰②]안판석 PD, 후반부 손예진 母 비중 놓치지 않았던 이유

    [일간스포츠] 입력 2018.05.24 09:00 수정 2018.05.2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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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계 거장' 안판석(57) 감독이 또 하나의 수작을 탄생시켰다. 리얼 멜로 JTBC 금토극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예쁜 누나')'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자극적인 요소는 없었다. 강력한 한 방도 없었다. 평범한 일상이 전해 주는 메시지는 그 이상의 힘을 가졌다. 손예진(윤진아)·정해인(서준희) 커플을 중심으로 두 사람의 성장과 변화를 담아냈다. '우리는 진짜 사랑하고 있는가?'란 물음을 남기며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방송 말미에 손예진·정해인 커플에게 위기가 드리우면서 이야기 전개를 둘러싼 의견이 엇갈렸다. 관심이 컸던 만큼 후폭풍도 뜨거웠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어디서 영감받았나.
    "처음에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해 볼까 했다. 작년에 읽었는데 진짜 명작이더라. 2018년에 19세기 소설을 적용하는 것은 어려웠다. 번안하고 극화하는 데까지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때 주인공인 안나 역으로 손예진을 생각했다. 손예진과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 작품이 어렵다면 30대 중반의 여성 이야기로 손예진과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30대 중반 여성들을 직접 만나면서 스토리를 잡아 갔다. 그러던 중 김승일 시인의 '나의 자랑 이랑'을 봤다. 가슴을 쳤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어제와 오늘은 분명히 다르다. 오늘의 일상은 살아남은 자의 일상이다. 일상에 특별함이 있다. 세심히 지켜보면 그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과 진짜 교감하고 싶어서 만든 작품이다. 그런 교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 소위 막장 요소가 없었다.
    "피할 길이 없지만, 타임머신이나 암, 출생의 비밀 등 요소들을 빼고 싶었다.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늘 시도는 해 왔었는데 8회쯤 가서 고꾸라졌다. 이번엔 16회까지 가고 싶었다. 처음부터 짜 놓지 말고 방향성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를 밀고 나가 보자고 했다. 쉽지 않은 실험인데 그러한 실험을 해 본 것이다. 그래서 누구한텐 욕먹고 누구한텐 칭찬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실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타임머신이나 암만 하겠나. 드라마는 한 집단의 정서를 좌우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장르다.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사심으로 다루거나 값싼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 초반엔 '누나'에 집중했지만 후반부엔 '예쁜'에 초점을 맞췄다. 의도적인 것이었나.
    "누구나 소중히 다루는 게 있지 않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 처음부터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사랑이 무엇이겠나. 진짜 사랑은 깊이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주의 깊게 물어보고 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쉬운 게 아니다. 살면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는지를 기억해 봐라. 진짜 사랑하면 다 외운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연애를 했던 한 달의 기록을 떠올려 보라. 100% 생각날 것이다. 없으면 실패한 것이다.(웃음) 사랑은 대충대충 하면 안 된다. 인간을 얻는 것이지 않나. 그런 면에서 진아와 준희는 위대한 사람들이다. 늘 사랑에 최선을 다하지 않나."
     

    - 진아란 캐릭터가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착하니까 사람들이 모든 짐을 진아에게 떠넘겨 버린다. 진아는 꿀꺽 삼키고 다 짊어진다. 그게 고귀한 점이자 비난받는 점이다. 하지만 그게 진아의 매력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걸 좇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말만 준비해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맞춰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반응하는 친구다. 늘 인간적인 선택을 해서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다. 세상은 비인간적으로 살면 편하게 살 수 있다. 인간적으로 세상을 살면 힘들어진다. 그리고 35세라는 나이는 부모의 감정적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나이다. 그걸 심리학 용어로 '감정의 쓰레기통'이라고 부른다. 아버지가 퇴직해서 소파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엄마한테 세끼를 다 얻어먹지 않나. 엄마는 딸한테 그런 부분에 대해 하소연하고, 아빠는 딸과 술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정작 딸은 양쪽에서 힘들어한다.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운 나쁜 결혼을 많이 한다. 사랑이 아니라 도피처를 찾기 위해 결혼하는 경우들이 있다."
     
    - 단순한 멜로가 아니었다.
    "장르로 구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인생 이야기가 있는데 이건 그냥 인생 이야기다. 한 사람의 인생을 더듬어 보려면 가족 관계·교우 관계·직장 관계, 사랑을 다뤄야 한다. 그것이 각각 다른 가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새끼줄처럼 꼬여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
     
    - 진아 엄마(길해연·김미연 역)의 교제 반대가 상투적이었다는 평이 있다.
    "서사물에서 상투적인 건 '클리셰'다. 클리셰와 아닌 것이 구별돼야 하는데, 우리가 먹고 자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 클리셰가 아니다. 뭔가 약간 독특한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꼭 나오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클리셰다. 딸을 컨트롤하려는 엄마? 그건 클리셰가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어떻게 다루냐가 관건이었다. 한 인간의 인생을 구성하는 데 부모 문제는 크다. (반복되다 보니) 지겨울 수 있어도 그 정도는 다루는 게 예의라고 봤다. 어떻게 엄마를 가벼이 보고 지나가나. 엄마가 무한한 사랑을 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사람을 컨트롤하려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컨트롤링'이라는 점을 다루고 싶었다."

    >>인터뷰③에 이어 

    황소영 기자
    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