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의 에떠 러시아]'파라오' 아파도 계속 뛰는 살라의 투혼

    [김희선의 에떠 러시아]'파라오' 아파도 계속 뛰는 살라의 투혼

    [일간스포츠] 입력 2018.06.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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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오'는 아파도 계속 뛸 수밖에 없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부상을 떨치고 돌아온 모하메드 살라(리버풀)가 자신의 월드컵 데뷔전을 패배로 마쳤다. 살라는 20일(한국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A조 2차전 러시아전에 선발로 출전했다. 어깨 부상으로 1차전에 결장했던 살라는 이날 자신의 생애 첫 월드컵 경기를 치렀으나 팀이 1-3으로 패배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살라에겐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을 것이다. 누가 봐도 살라의 몸 상태는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에서 상대 수비진의 혼을 쏙 빼놓았던 스피드는 그대로였지만, 의식적으로 다친 왼팔을 보호하며 뛰느라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최대한 경합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 탓에 슈팅을 날릴 기회도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이런 몸 상태에도 살라는 러시아전에 반드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없이 치른 우루과이와 1차전 패배로 이집트는 탈락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고, 28년 만에 도전하는 월드컵 본선을 허무하게 마무리하지 않기 위해선 '파라오'가 필요했다.

    부상 여파로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살라는 역시 살라였다. 러시아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조금씩 공을 잡는 횟수를 늘렸고, 전반 42분에는 모하메드 압델 샤피가 찔러 준 패스를 받아 왼발 터닝슛으로 연결, 첫 슈팅을 만들었다. 비록 이 슈팅은 골대를 벗어났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러시아 관중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살라가 분위기를 끌어올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후반 시작 이후 2분, 로만 조브닌이 시도한 슈팅이 그라운드를 치고 골문으로 향했다. 이집트의 주장 아메드 파티가 이 슈팅을 걷어 내려다가 그만 자책골을 터뜨렸다. 0의 균형을 지키던 스코어는 0-1로 러시아 쪽으로 기울었고, 끌려가는 상황이 된 이집트는 부상을 안고 뛰는 살라를 보호해 줄 여유를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데니스 체리셰프·아르템 주바의 연속골로 스코어는 0-3, 3골 차로 벌어졌다. 이대로 2패를 기록하게 되면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 28년 만에 하는 월드컵 본선 도전을 이렇게 허망하게 마칠 수 없었던 살라는 교체 없이 계속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리고 후반 27분에 비디오 판독(VAR)으로 얻어 낸 페널티킥 상황에서 침착하게 골을 성공하며 월드컵 데뷔골로 이집트에 만회골을 안겼다.

    살라의 만회골이 터진 순간, 만원 관중 속 파라오 왕관을 쓴 이집트팬들은 벌떡 일어나 "모 살라! 모 살라!"를 외쳤다. 살라는 이집트팬들의 환호 속에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뛰며 끝까지 러시아의 골문을 노렸다.

    비록 더 이상 골은 나오지 않았다. 이집트의 도전은 이대로 끝났지만, 러시아까지 온 이집트팬들과 경기장을 가득 채운 러시아팬들은 부상에도 풀타임을 소화한 살라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집트를 위해 90분간 뛴 파라오에게 보내는 경의를 담은 박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김희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