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핸드볼피플] '섬소년' 최현근의 후회와 희망 그리고 할머니

    [IS 핸드볼피플] '섬소년' 최현근의 후회와 희망 그리고 할머니

    [일간스포츠] 입력 2019.02.20 06:00 수정 2019.0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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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실 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죠."
     
    상무피닉스의 최현근(26)은 '섬소년'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 '육지'로 건너와 핸드볼을 시작했고, 긴 방황의 시간을 이겨 내고 리그 정상급 선수로 차근차근 성장해 왔다. 어린 시절에 자신을 뒷바라지한 할머니의 조언 한마디가 손자의 마음을 붙잡았다.
     
    올 시즌 활약도 돋보인다. 반환점을 돈 2018~2019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남자부 득점 2위(61골)에 올라 있다. 다만 팀 성적이 좋지 않다. 상무는 2라운드까지 1승9패로 최하위다. 적게는 12명부터 많게는 17명까지 체력을 안배해 가며 뛰는 다른 팀들과 달리, 상무는 별다른 교체 멤버도 없이 선수 8명만으로 한 시즌을 나고 있다. 경기 수가 많아질수록 힘에 점점 부치는 게 당연하다.
     
    지난 17일 하남시청전을 마치고 만난 최현근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시즌 첫 승을 신고한 뒤 치른 첫 경기. 꼭 이기고 싶었지만, 다시 큰 점수 차(25-34)로 졌다. 그는 "너무 의욕이 앞섰던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창피하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자신이 핸드볼을 잘해야 하는 진짜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 지난 3일 아홉 경기 만에 충남체육회를 상대로 첫 승리를 따냈다.
    "12월에 부상 선수가 많아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우리팀 선수 수가 많지 않아 로테이션을 도는 선수들이 없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전국체육대회 때부터 계속 경기를 준비하고 많이 뛰면서 선수들 부상이 이어졌고, 개막 이후 8경기 모두 계속 어려운 게임만 한 것 같다. 그래도 1월에 한 달 반 정도 쉬는 시기에 몸을 회복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또 계속 비디오를 보면서 우리가 안 되는 부분을 맞춰 보고 장점으로 바꿔 보려고 애썼다. 충남체육회전에서 그 부분이 잘 풀린 것 같다. 한 번 이기고 나니 '아, 우리도 해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임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하남시청전이 더 아쉽다."

     

    - 첫 2연승을 노리고 경기를 시작했을 텐데. 초반에 5점 차까지 앞섰지만 전반 막바지부터 역전됐다.
    "준비를 많이 했다. 상무는 전통과 역사가 있는 팀이니, 신생팀은 한 번 꺾어 보자는 생각으로 똘똘 뭉쳤다. 하루 전 미팅을 하면서 '장점을 잘 살리자' '안 풀릴 때는 옆 사람에게 잘 얘기해 주면서 보완하자'고 얘기했다. 초반에는 우리가 훈련한 대로 잘 풀렸고,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서로 손발을 맞춰 가면서 잘해 보려는 호흡이 나왔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점점 의욕이 앞서는 부분이 생겼다. 잘 흘러가는 것 같다가 에러가 많이 나왔고, 나 자신도 슬슬 화가 나면서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실력이 안 돼도 나는 군인이니까 '깡'으로 패기 있게 게임을 했어야 했는데…. 감독님께도 죄송하고 여러모로 부끄럽다.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아무래도 교체 멤버가 없으니 경기 중에도 힘에 부치는 부분이 있을 듯하다.
    "1라운드 때부터 늘 그런 상황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넘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득점 2위는) 아무래도 출전 시간이 많다 보니 따라오는 것 같다. 처음에는 순위에 욕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선수가 부족한 우리팀에서 '나'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고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을 뿐이다."
     
    - 핸드볼은 어떻게, 왜 시작하게 됐나.
    "초등학교(대남초) 4학년 때, 학교에서 없어졌던 핸드볼부가 재창단됐다. 4학년과 5학년 학생 중 24명을 뽑았는데, 그중 내가 유일한 왼손잡이였다. 처음에는 운동에 대한 의욕보다 '먹는 것'에 대한 의욕이 계기가 됐다. 아침마다 우유나 주스 같은 간식을 나눠 주는데, 그게 먹고 싶었다.(웃음) 물론 그 후에는 집도 멀고 힘든 상황이 많아서 그만둘까 고민도 했지만, 처음에는 다 재미있었다."

    - 집이 얼마나 멀었나.
    "사실 내가 섬 출신이다. 충남 보령에 있는 고대도에서 태어났다. 80가구 정도 있는 섬이다. 처음에는 그 안에 있는 분교에 다녔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육지'로 나가시게 되면서, 더 큰 학교에 다니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 뭍에 사시던 막내 고모 집으로 와서 살다가 핸드볼을 하게 됐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운동을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무서워서 말은 못하고 숨어 다니고, 섬으로 다시 도망가다가 돌아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방황했던 시기인 것 같다."

     
     
    - 어떻게 마음을 잡았나.
    "부모님이 어업을 하셨고, 한번 바다에 나가시면 일주일씩 집을 비우시기도 해서 나와 동생은 거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키우셨다. 그런데 고2 때 다시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섬으로 가니,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가 하고 싶어서 핸드볼을 시작했고, 나는 그런 너를 말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포기하면 어떻게 하냐. 그동안 뼈 빠지게 운동한 게 아깝지도 않냐.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 나가려고 하냐.'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시만 해도 실업팀이 세 팀 정도밖에 없었을 때라 과연 내가 그중 하나에 입단할 수 있을지, 그 잘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버틸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점이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서 엔지니어나 정비 관련 분야를 배울 수 있을지 찾아보기도 했고, 집안일(어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핸드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 할머니가 길잡이 역할을 하신 듯하다.
    "그렇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원래 무엇이든,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다. 그때 할머니가 나를 말리시면서 '나는 너 태극마크 다는 거 한 번이라도 보는 게 소원'이라는 얘기도 하시더라. 그 후 운동이 고되면 늘 할머니 생각이 났다. 매일 할머니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태극마크 다는 거 보고 싶다는 소원을 못 들어드린 게 가장 죄송하다."
     
    - 할머니는 지금 어디 계신가.
    "대학교(원광대) 4학년이었던 2015년에 돌아가셨다. 전국종별핸드볼선수권 대학부에서 우승하고 신나게 학교로 복귀했는데, 할머니에게 소식을 전하려던 순간 세상을 떠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원래 후두암으로 투병 중이셨는데, 암 진단을 받고도 7~8년을 더 사시면서 날 뒷바라지하셨다. 그 후 한동안 잠자리에 누우면 하루에 한 번씩 할머니를 생각하고 후회했다. 내가 예전에 할머니 속을 태우고 가슴 아프게 한 게 자꾸 떠오르더라."
     
    - 어떤 게 가장 생각났나.
    "어릴 때는 학교 학부모 회의에서 나만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가 오시는 게 창피해서 오시라는 말씀도 안 드리고 그랬다. 그게 참 사소한 일인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니까 생각난다. 또 '나쁜 짓 하지 마라, 바르게 살아라, 남의 물건에는 손대지 마라'고 습관처럼 말씀하실 때마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화내면서 잔소리로만 생각했다. 이제는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돼서 마음이 더 아프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 않나. 지금은 그냥 다른 생각 하지 않고, 할머니에게 잘 먹고 잘 살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게 나의 큰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아 보려고 한다."
     
     

    - 지금은 핸드볼을 계속한 보람을 느끼나.
    "지난 시즌에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입대 전이라 인천도시공사 소속으로 뛰고 있었다. 팀이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해서 일가친척이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경기장에 오셨다. 사실 부모님이 워낙 바쁘시고 집도 멀다 보니 핸드볼을 시작하고 나서 15~16년 동안 내가 경기 뛰는 모습을 한 번도 직접 보신 적이 없다. 그런데 TV에서 두산과 챔프전을 한다고 광고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큰 무대에 진출했는데 왜 얘기도 안 했냐'면서 모두 나들이를 오신 거다. 그렇게 많은 가족이 내가 뛰는 모습을 본 게 처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경기를 뛰고 있는데 뒤에서 '현근이 파이팅!' 하는 응원이 막 들리니까 기분이 진짜 이상하더라.(웃음) 그 소리를 들으니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응원은 늘 큰 힘이 되지 않나.
    "내가 무뚝뚝해서 그동안 경기장에 와 달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고, 부모님도 워낙 바쁘시니 오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는데, 가족이 그렇게 지켜보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새롭고 기분 좋은 경험이더라.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내 뒤에 또 다른 가족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는 생각도 짧았고 그냥 그 순간의 감정에만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군대에 간 뒤에는 쉴 때마다 주변도 돌아보게 되고 여러 가지 후회를 하게 되더라.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뛰고 있나.
    "지금은 군인 신분이니 아무 사고 없이, 부상 없이 팀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 나가고 싶다. 또 감독님께 많은 것을 전수받고, 그것을 다 내 것으로 받아들여서 개인 능력을 더 키우고 싶다. 내년 2월 전역할 때까지 복무 기간이 1년 정도 남았다. 그 기간에 잘 성장해서 다시 전 소속팀(인천도시공사)으로 돌아가고, 전역 이후 자리를 잘 잡아서 재계약했으면 좋겠다."
     
    - 핸드볼 선수로서 남은 꿈은 무엇인가.
    "앞으로 내가 핸드볼을 몇 년 더 할 수 있을지 보장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어떻게든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한 번이라도 나가는 게 꿈이자 목표다. 그리고 운동을 그만두기 전에 꼭 한 번 우승해 보고 싶다. 지난 시즌 챔프전까지 경험해 보니 그 꿈이 더 커졌다."
     
    청주=배영은 기자
    사진=대한핸드볼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