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도쿄리포트] 2008년 8월 22일, 김경문과 이나바의 희비가 엇갈린 11년 전 그날

    [IS 도쿄리포트] 2008년 8월 22일, 김경문과 이나바의 희비가 엇갈린 11년 전 그날

    [일간스포츠] 입력 2019.11.11 16:24 수정 2019.11.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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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2019 WBSC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를 앞두고 열린 감독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경문 감독과 이나바 아쓰노리 감독. 연합뉴스 제공

    지난 10일 2019 WBSC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를 앞두고 열린 감독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경문 감독과 이나바 아쓰노리 감독. 연합뉴스 제공


    2008년 8월 22일, 중국 우커송 야구장.  
     
    한국과 일본이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에서 결승 진출 티켓을 놓고 맞붙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한국은 일본전을 포함해 예선 7경기를 모두 이기며 승승장구했지만, '국민 타자' 이승엽만은 도합 22타수 3안타로 부진해 우려를 샀다. 그러나 김경문 야구대표팀 감독은 이날 역시 이승엽을 4번 타자로 밀어 붙였다. "이승엽은 이승엽이다. 정말 중요할 때 딱 한 번만 해주면 된다"고 했다.  
     
    2-2로 맞선 8회 1사 1루. 다음 타자는 앞선 세 타석에서 삼진-병살타-삼진으로 물러난 이승엽이었다. 김 감독은 미동도 하지 않고 더그아웃에 서서 타석으로 걸어가는 이승엽을 지켜봤다. 숨을 고른 이승엽이 당시 일본을 대표하던 마무리 투수 이와세 히토키의 직구를 퍼 올렸다.  

     
    사진=중앙포토

    사진=중앙포토


    타구는 천천히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더니 오른쪽 담장을 넘었다. 일본의 우익수 이나바 아쓰노리가 펜스까지 따라갔지만 소용 없었다. 이나바의 눈앞에서 타구가 사라진 순간, 1루를 지나던 이승엽은 만세를 불렀다. 한국은 4-2로 앞서갔고 여세를 몰아 두 점을 더 뽑았다. 한국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지나온 모든 순간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그로부터 11년 여가 흐른 2019년 11월 10일, 일본 도쿄돔 호텔.  
     
    김 감독과 이나바가 다시 만났다.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를 앞두고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 자리였다. 김 감독은 그날에 이어 또 한번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일본에 왔다. 당시 일본 대표팀 외야수였던 이나바는 2017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 자리에 올랐다. 고쿠보 히로키 전 감독이 2015 프리미어12와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우승에 실패한 뒤 국제대회에서 일본 야구의 위상을 다시 끌어 올릴 '구원 투수'로 낙점됐다.  
     
    두 감독의 진검승부가 펼쳐질 진짜 무대는 프리미어12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한다. 베이징 대회에서 일본을 두 차례나 꺾고 금메달을 딴 한국은 12년 만에 재개되는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다시 가져오고 싶다. 안방에서 올림픽을 치르게 된 일본은 당연히 그때의 굴욕을 되갚고 아시아 야구 정상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경문 감독과 이나바 감독의 어깨에 걸린 기대와 부담이 그만큼 무겁다. 
     
    두 감독의 나이는 14세 차. 김 감독은 61세, 이나바 감독은 47세다. 기자회견에서 밝힌 11년 전 기억에 대한 소감도 두 감독의 경력과 스타일만큼이나 사뭇 달랐다.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에 진출한 일본대표팀의 이나바 아츠노리 감독이 10일 지바 조조마린스타디움에서 팀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에 진출한 일본대표팀의 이나바 아츠노리 감독이 10일 지바 조조마린스타디움에서 팀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나바 감독은 비장했다. 안방에서 열린 2015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 한국에 9회 통한의 역전승을 허용한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당시 이나바 감독은 일본 대표팀 타격코치였다. 선수로 출전했던 베이징올림픽의 아쉬움도 여전히 생생한 듯했다. "그때 정말 너무나 안타깝고 억울했다. 그 마음을 원동력 삼아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왔다"며 "도쿄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는 각오를 내놨다.  
     
    반면 이미 올림픽 금메달을 경험해 본 김 감독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더 노련해지고 더 부드러워졌다. 과묵한 카리스마가 트레이드마크였지만, 이제는 더그아웃에서 선수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다 목이 잔뜩 잠겨 버렸을 정도로 달라졌다. "11년 전 이승엽 선수의 타구가 이나바 감독이 서 있던 우익수 쪽으로 날아갔던 장면이 생각난다"고 여유 있게 받아친 뒤 "일본은 분명 강하고 좋은 팀이지만 한국도 그 못지않게 강하다. 좋은 승부를 하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영원한 호적수인 한국과 일본. 일본 야구가 아직 한국보다 한 수 위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대표끼리의 대결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번 프리미어12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은 젊고, 패기 넘치고, 짜임새가 있고, 무엇보다 하나로 뭉쳐 있다. 그리고 김경문이라는 이름의 '올림픽 금메달 감독'이 그들을 앞장 서 이끌고 있다.  
     
    어차피 1등의 주인공은 하늘이 결정하는 것. 적어도 한국 야구대표팀이 부끄러운 경기를 펼치다 쓸쓸히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한 대표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일본전은 꼭 이겨야 하는 경기지만, 일본에게 한국전은 우리보다 '더' 이겨야 하는 경기다. 승부는 언제나 덜 긴장하는 쪽이 유리하다."  
     
    도쿄=배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