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도쿄리포트] ”졌다면 억울했을 것”…4년 전 악몽 상기시킨 日 심판 오심

    [IS 도쿄리포트] ”졌다면 억울했을 것”…4년 전 악몽 상기시킨 日 심판 오심

    [일간스포츠] 입력 2019.11.12 05:59 수정 2019.11.12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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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지만, 졌다면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대표팀 투수 이영하)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가 또 시작부터 논란이다. 일본인 주심이 공교롭게도 한국에 불리한 오심을 했다. 비디오 리플레이 화면 안에 명백히 드러난 미국 포수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자의 아웃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한국은 11일 도쿄돔에서 미국과 슈퍼라운드 첫 경기를 치렀다. 1회 김재환의 선제 3점 홈런이 터져 일찌감치 3-0으로 앞서갔고, 3회 역시 김하성의 좌전 안타로 만든 1사 1루서 이정후가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터트려 활발한 공격 흐름을 이어갔다. 이정후의 장타와 함께 발 빠른 김하성이 홈까지 내달리면서 한국은 추가 득점을 올리는 듯했다.

    미국 포수 에릭 크라츠가 무릎으로 홈 플레이트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지만, 김하성은 슬라이딩을 하면서 왼손으로 홈 플레이트 가장자리를 터치하는 데 성공했다. 반대로 크라츠는 빠르게 홈 플레이트 옆을 통과하는 김하성의 몸을 태그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일본인인 시마타 데츠야(52) 주심은 지체 없이 아웃을 선언했다. 시마타 주심은 1999년부터 일본 프로야구 심판으로 일해 온 21년차 베테랑이다. 

     


    슬라이딩 후 재빨리 일어나 다시 홈 플레이트를 밟은 김하성은 억울한 표정으로 세이프를 주장했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 즉각 달려나와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다. 도쿄돔 전광판과 TV 중계 화면에 리플레이된 느린 화면에는 크라츠가 김하성의 몸 어느 곳도 태그하지 못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잡혔다. 

    그러나 충분히 결과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는데도 비디오 판독 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이어 결과를 확인한 시마타 주심은 번복 없이 그대로 아웃 판정을 유지했다. 전광판 화면을 보고 세이프를 확신하던 한국 벤치는 얼어붙었고, 김하성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시마타 주심은 도리어 김하성 쪽으로 다가가 경고 제스처를 취했다. 김 감독이 심판과 선수들을 진정시켜 겨우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한국 더그아웃에는 한동안 불편한 기류가 흐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한국은 오심으로 무산된 1득점 없이도 5-1로 승리했다. 그렇다고 이미 벌어졌던 불합리한 상황이 아예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김하성은 경기 후 당시 상황에 대해 "분명히 포수가 날 태그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 "혹시 베이스를 찍지 못했을까봐 다시 돌아갔을 때도 내가 홈플레이트를 먼저 밟았는데, 비디오 판독 때 그 뒷부분은 나오지 않고 그냥 아웃을 주더라"고 토로했다. 이어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심판의 능력이니까 어쩔 수 없다"며 "어쨌든 경기는 끝났고 다시 돌릴 수 없으니 더 이상 기분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이 보기에도 판정 결과가 옳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첫 번째 아웃 판정은 심판의 순간적인 실수일 수 있다 해도, 비디오 판독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상황마저 바로잡지 않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필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하필 일본인 주심이 하필 한국 선수에게 안긴 불이익이라서 더 그렇다. 

    두 번째 투수로 출전했던 이영하는 "선수들은 벤치에서 모두 세이프라고 생각했다. 만약 졌다면 정말 기분이 나빴을 것"이라며 "우리 입장에선 억울하고 꺼림칙한 게 당연하지만, 열심히 뛰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마음을 달랬다. 김경문 감독은 경기 후 "당연히 비디오 판독을 신청해야 하는 장면이었다"며 "결과가 아쉽지만 깨끗하게 인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한국이 이같은 판정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4년 전 열린 첫 프리미어12 대회에서도 지나치게 일본 대표팀 위주로 진행되는 일정 탓에 고생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KBO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야구 부활을 돕기 위해 주도적으로 대회를 준비한 일본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지만, 도리어 일본은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방식으로 대회를 운영해 끊임없이 논란을 빚었다. 

    일단 대회 최고의 빅매치인 한일전을 개막전으로 편성하면서 굳이 이 경기 하나만 삿포로에서 치르는 일정을 짰다. 심지어 경기 하루 전날 삿포로돔에서 프로축구 일정이 잡혀있던 탓에 한국 선수들은 다른 팀 실내연습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 훈련을 해야 했다. 반면 일본은 삿포로돔을 홈구장으로 쓰는 니혼햄 소속 오타니 쇼헤이(현 LA 에인절스)를 일찌감치 선발투수로 내정하고 준비시켰다.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본이 오타니를 위해 일부러 삿포로를 개막전 장소로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나왔던 이유다. 

    게다가 한국 선수단은 삿포로에 3박 4일만 머물다 대만으로 날아가 현지 경기 일정을 소화한 뒤 마지막 야간 경기를 마치고 다음날 새벽 4강전이 열리는 일본 도쿄로 이동해야 했다. 일본 선수들이 여유 있게 오후 비행기로 도쿄에 복귀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무엇보다 일본이 결승에 진출하면, 무조건 하루를 쉬고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일정을 잡아 손가락질을 받았다. 한국이 준결승에서 일본을 극적으로 꺾고 결승에 나가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을 불이익들이다. 

     


    일본은 첫 대회에서 불거졌던 형평성 논란을 의식한 듯 2회 대회인 올해는 자국 슈퍼라운드 첫 경기를 도쿄돔이 아닌 지바 조조마린스타디움에서 치렀다. 도쿄돔에서 열린 공식 개막전은 한국과 미국의 대결로 편성했다. 또 흥행성이 높은 한국 경기를 모두 오후 7시에 열어 한국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도 이전보다 편해졌다. 일본야구기구 관계자는 "일본 팀만 계속 도쿄돔에서 경기를 한다면 불공평한 일이라고 생각해 일본도 첫날 지바에서 한 경기를 치르고 이동하는 일정을 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동거리가 멀고 구장이 개방형인 지바에서 똑같이 한 경기씩을 잡아 놓았다 해도, 그 게임의 무게감까지 공평한 것은 아니다. 일본은 슈퍼라운드 진출국 중 세계랭킹이 가장 낮은 최약체 호주와 맞붙었지만, 한국은 2020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반드시 꺾어야 하는 '난적' 대만을 지바에서 만나야 했다.

    무엇보다 진짜 불공평한 상황은 미국과의 경기 도중에 벌어지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한국이 이미 3-0 리드를 잡고 추가점을 뽑으려 했던 그 시점에 일본은 호주에 0-2로 끌려 가고 있었다. 문제 장면이 정확하게 촬영된 비디오 판독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오심이라면 고의였어도 문제고, 고의가 아니었어도 문제다. 한국 대표팀의 기분 좋은 출발에 찜찜한 오점이 남았다. 


    도쿄=배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