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땅벌’ 한국 하키, 도쿄올림픽 못 간다

    ‘붉은 땅벌’ 한국 하키, 도쿄올림픽 못 간다

    [일간스포츠] 입력 2019.11.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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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말 열린 2020년 도쿄 올림픽 여자 하키 최종예선 한국-스페인전 모습. 한국은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사진 국제하키연맹]

    지난달 말 열린 2020년 도쿄 올림픽 여자 하키 최종예선 한국-스페인전 모습. 한국은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사진 국제하키연맹]

    1980년대 한국 여자하키 대표팀은 ‘붉은 땅벌’로 불렸다. 태릉선수촌 하키장에 인조잔디가 깔린 게 85년쯤인데, 여자하키팀은 그 전까지 붉은 유니폼을 입고 맨땅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며 뛰었다. 그 모습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붉은 땅벌’은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서독, 캐나다, 영국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까지 경기장을 찾은 결승전에서 호주에 0-2로 져 아쉽게 은메달로 마쳤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또 한 번 은메달 신화를 썼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하키 준결승에서 진원심이 영국의 수비수 2명을 제치고 질주하고 있다.[중앙포토]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하키 준결승에서 진원심이 영국의 수비수 2명을 제치고 질주하고 있다.[중앙포토]

    한국 남자하키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정말 극적인 메달 획득이었다. 준결승전 상대는 올림픽 금메달 3회의 강호 파키스탄. 그런 파키스탄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육탄방어를 펼친 한국 선수들에게 “자살특공대 같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네덜란드와 결승전에서 1-3으로 끌려가다 3-3으로 쫓아갔다. 아쉽게 승부치기(페널티 스트로크) 끝에 졌다.
     
    얼굴부터 발목까지 까맣게 그을린 채 스틱을 들고 필드를 누비는 하키선수들은 감동 그 자체였다. 온 국민이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한국 남녀 하키는 1986년 서울 대회 이래 아시안게임에서 9개의 금메달을 쏟아냈다. 중국과 일본에서 앞다퉈 한국 지도자를 모셔갔다. 한국 하키의 전성시대가 2000년대 초까지 펼쳐졌다.
     
    하지만 다 옛날이야기다. 내년 도쿄 올림픽에 한국 하키는 없다. 남녀 모두 최종예선에서 탈락했다. 특히 여자하키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도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을 추진했다. 
     
    여자 대표팀(세계 11위)은 지난달 26, 27일 스페인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홈팀 스페인(7위)에 1, 2차전 합계 1-4로 졌다. 1988년부터 2016년까지 이어진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 막을 내렸다. 남자대표팀(세계 16위)도 2, 3일 뉴질랜드에서 열린 최종예선에서 1, 2차전 합계 2-6으로 홈팀 뉴질랜드(9위)에 올림픽 본선 티켓을 넘겨줬다. 2016년에 이어 2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 무산이다.
     
     
    한국남자하키대표팀은 뉴질랜드와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전력을 다했지만 출전권 확보에는 실패했다. [사진 국제하키연맹]

    한국남자하키대표팀은 뉴질랜드와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전력을 다했지만 출전권 확보에는 실패했다. [사진 국제하키연맹]

    도쿄 올림픽 하키 출전국은 남녀 각각 12개국이다. 대륙별 챔피언 5개국이 본선에 직행했고, 5개국을 뺀 랭킹 상위 14개국이 일대일로 맞붙어 남은 7개국을 가린다. 상위 랭커의 홈에서 2연전을 치른다. 현재 여자하키 아프리카 챔피언 남아공의 올림픽 출전 포기 얘기가 나온다. 이 경우 차순위 팀 한국에 기회가 올 수 있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한국 남녀하키가 올림픽 본선에 함께 진출하지 못하는 건 1984년 LA 올림픽 이후 36년 만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40년 만에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어쩌다 한국 하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신석교 남자 대표팀 감독은 “한국은 올림픽 1차 예선을 3위로 통과했다. 그런데 막상 최종예선에서 뉴질랜드를 상대해 보니 전혀 다른 (강한) 팀이었다. 국제하키연맹(FIH) 프로리그에 출전해 강팀과 대결하면서 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FIH프로리그는 1~6월 8~9개국이 출전하는 대회다. 한국은 남녀 모두 참가하지 못했다. 심지어 남녀 모두 8월 도쿄올림픽 프레대회 출전까지 포기했다. 하키계에서는 “(대한하키)협회 재정이 바닥나, 항공료와 체재비가 부담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한국 하키는 최근 몇 년간 국제대회 초청장이 와도 선뜻 나가지 못하고 있다. 협회 재정이 넉넉하지 않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지난달 말 열린 2020년 도쿄 올림픽 여자 하키 최종예선 한국-스페인전 모습. 한국은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사진 국제하키연맹]

    지난달 말 열린 2020년 도쿄 올림픽 여자 하키 최종예선 한국-스페인전 모습. 한국은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사진 국제하키연맹]

    올 4월 취임한 강동훈 협회장(로그인렌트카 대표)은 “프레올림픽에 불참한 건 경비 때문이 아니다. 다른 나라가 오지 않아 우리를 뒤늦게 초청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는 이미 1년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며 “올림픽 최종예선을 앞두고 남자는 네덜란드, 여자는 아일랜드에서 각각 전지 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선수는 태극마크에 시큰둥해 뽑지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재정 지원을 좀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국 남녀 대표팀 모두 코칭스태프는 각각 감독과 코치 2명뿐이다. 골키퍼 전담 코치조차 없다. 유럽 강팀들은 전담 스태프까지 8~10명이나 대표팀에 붙는다. 저변도 좁다. 국내 실업팀은 남자 5개, 여자 6개뿐이다. 등록 선수는 학생과 성인을 합쳐 1250명, 그중 실업선수는 220명에 불과하다.
     
    박신흠 협회 사무처장은 “이번 올림픽 예선만이 아니라, (부진은) 세계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게 누적된 거다. 뉴질랜드는 등록 선수가 4만5000명(한국의 36배)이 넘는다. 우리는 1990년대 3500명 선에서 현재 절반으로 줄었다. 하키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도 올림픽 예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1가정 1자녀 시대에 비인기 종목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임계숙 여자대표팀 감독은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협회는 21일 경기력 향상위원회를 연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