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스토리] 류현진과 김광현, 11년 전 최강 원투펀치가 '멘토'와 '멘티'로

    [IS 스토리] 류현진과 김광현, 11년 전 최강 원투펀치가 '멘토'와 '멘티'로

    [일간스포츠] 입력 2019.12.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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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현진과 김광현이 4일 열린 2019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세완 기자

    류현진과 김광현이 4일 열린 2019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세완 기자


    "부디 다른 리그에서 뛰자." (류현진)
    "무슨 말씀. 저는 형의 '거머리'가 되겠습니다." (김광현)  
     
    한국 야구가 낳은 최고의 왼손 투수 두 명이 내년 시즌 바다 건너 메이저리그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한다. LA 다저스에서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가 된 류현진(32)과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 포스팅 절차를 밟기 시작한 김광현(31·SK)이다.  
     
    한국 야구가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낸 2008 베이징올림픽은 류현진과 김광현이라는 역대 최강의 국가대표 왼손 원투펀치를 발굴한 대회이기도 했다. 당시 각각 프로 3년차와 2년차 투수였던 둘은 나란히 '괴물'이라는 별명을 달고 프로 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뒤 순식간에 리그 최정상급 투수로 뛰어 오른 '천재'들이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역대 최강의 좌완 원투펀치로 활약한 류현진과 김광현의 모습. 중앙포토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역대 최강의 좌완 원투펀치로 활약한 류현진과 김광현의 모습. 중앙포토


    올림픽 금메달도 완벽하게 합작했다. 에이스 류현진은 예선 캐나다전에서 1-0 완봉승을 이끌어낸 뒤 쿠바와 결승전에도 선발 등판해 8⅓이닝 2실점으로 역투했다. 김광현은 예선과 준결승전에서 모두 일본을 상대로 호투해 한국 야구의 새로운 '일본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그 후 11년이 흐른 지금까지 아직 류현진과 김광현을 능가하는 투수는 나타자니 않고 있다.  

    둘은 KBO 리그 전체가 늘 주목하는 라이벌 관계이기도 했다. 정규시즌 성적에서는 고졸 신인으로 입단하자마자 투수 트리플크라운(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1위)을 달성한 류현진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지만, 김광현은 당대 최강팀이었던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앞장서 이끌면서 가을마다 빛을 발했다. 류현진이 7년 동안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부동의 에이스로 군림하는 사이, 김광현은 그런 류현진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꼽혔다.  
     
    특히 2010년에는 둘 다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류현진은 192⅔이닝을 던지면서 16승 4패, 평균자책점 1.82, 탈삼진 187개를 기록했고 김광현은 193⅔이닝을 소화하면서 17승 7패, 평균자책점 2.37, 탈삼진 183개를 올렸다. 류현진은 1점대 평균자책점과 23연속경기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고도 김광현에게 다승왕을 내줘 트리플 크라운을 이루지 못했다.  

     

    동시에 둘의 선발 맞대결은 자연스럽게 한국 모든 야구팬이 기다리는 '비기스트(Biggest) 매치'로 여겨졌다. 시범경기와 올스타전에서 나란히 선발 투수로 나서기만 해도 뜨거운 화제가 될 정도. 그러나 그만큼 성사되기도 어려웠다. 하늘조차 돕지 않았다. 2010년 5월 23일 대전구장에서 단 한 차례 두 투수가 같은 경기 선발 투수로 예고돼 포스트시즌을 방불케하는 취재진과 관중이 대전구장에 몰렸지만, 경기 개시 단 1분을 앞두고 비로 취소돼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류현진이 2013년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면서 두 투수는 본격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됐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자마자 쟁쟁한 LA 다저스 선발진에 포함돼 첫 두 시즌 연속 14승을 올렸다. 이후 어깨와 팔꿈치 수술을 받고 이런저런 부상도 찾아와 힘겨운 시간을 겪기도 했지만, 올해 한국인 메이저리거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1위(2.32)에 오르는 반전 드라마를 쓰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리그 최고 투수를 가리는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한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1위표를 얻어 명실상부 최고 투수가 됐다.  

     

    김광현은 류현진이 떠난 한국에서 최고 투수 자리에 올랐다. 역시 팔꿈치 인대접합수술과 재활을 거쳤지만, 지난해 마운드에 복귀해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고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올해는 31경기에서 190⅓이닝을 던지면서 17승 6패, 평균자책점 2.51, 탈삼진 180개를 기록해 2010년에 이은 두 번째 커리어 하이 시즌을 열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에는 마침내 구단의 허가를 얻어 정식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에 재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8년 만에 류현진과 김광현이 다시 같은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미 메이저리그 최정상 투수로 우뚝 선 류현진은 이제 김광현에게 '롤 모델'이다. 류현진이 올 시즌 빅리그에서 펄펄 나는 모습을 보면서 김광현도 다시 한 번 자신의 오랜 꿈에 불을 지폈다. 때마침 둘은 지난 4일 일간스포츠와 조아제약이 공동 제정한 '2019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 시상식에서 1년 만에 재회했다. 이미 김광현의 포스팅 소식을 들은 류현진은 "이전에는 광현이와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직은 조심스럽고, 계약이 진행되면 그 이후에 서로 자세히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오랜만에 봤는데 몸도 좋아보이는 것 같고 얼굴도 밝아보인다"고 흐뭇해했다.  
     
    류현진은 1년 후배이자 좋은 라이벌이었던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광현이는 지금 한국 최고의 투수고, 부상이 있긴 했지만 재활에 성공해서 완벽하게 해결됐다"며 "미국에서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또 "이미 좋은 투수라 내가 조언할 것은 없다. 그저 첫 번째는 건강"이라며 "두 번째로는 팀에 빨리 녹아드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팀 메이트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열린 2019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김광현이 최고투수상을 수상하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민규 기자

    지난 4일 열린 2019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김광현이 최고투수상을 수상하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민규 기자


    김광현 역시 '류현진'이라는 멘토에게 적극적으로 기댈 생각이다. 그는 "첫 번째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는 게 중요하지만 가서 잘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현진이 형이 좋은 케이스로 모범적인 모습 많이 보여줘서 나도 그 길을 따라가려면 조언을 더 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또 "형이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기 때문에 존경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나도 잘해서 현진이 형의 뒤를 이을 수 있는 투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단 하나, 둘의 생각이 다른 지점이 있다. 류현진은 "광현이와 다른 리그에서 뛰면서 최대한 상대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농담하면서 "당연히 경기장에서 만나면 서로 부담스러울 것이다. 반갑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짓 손사래를 쳤다.  
     
    반면 김광현은 아예 '같은 팀'에서 뛰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스프링캠프지만 같아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팀이 되면 더 좋을 것 같다. 가까이에서 배울 점도 많고 얘기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같은 팀이 아니라면 리그라도 같아야 가깝게 지내면서 대화도 하고 질문도 할 수 있지 않나"라며 "현진이 형의 모든 것을 캐내는 '거머리' 같은 존재가 되겠다"고 웃어 보였다.  
     
     
    배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