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봉준호, 국위 선양 넘어 세계 영화산업 뒤흔든다

    '기생충'과 봉준호, 국위 선양 넘어 세계 영화산업 뒤흔든다

    [일간스포츠] 입력 2020.02.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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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국위 선양이나 개인의 영광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세계 영화 산업의 패러다임을 뒤흔든다.  
     
    미국의 영화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최근 '역사적인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이 세계 영화 산업의 게임 체인저(Game-Changer)가 될 것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게임 체인저란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엄청난 변화를 야기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할 만한 인물이나 사건, 상품이나 기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막을 보기 꺼리는 관객들이 대다수인,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지인 북미에서 '기생충'이 거머쥔 오스카는 이처럼 세계 영화 산업의 판도를 바꿀 만큼 충격적이며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반란은 이미 시작됐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인 10일 월요일 '기생충'은 북미에서 5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전날보다 15.6%, 전주보다 213.3% 늘어난 액수다. 화요일엔 66만 달러를 벌었다. 박스오피스 순위는 12위에서 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까지 1060곳에서 상영됐고, 주말까지 상영관이 2000개 이상으로 확대된다. 다가오는 주말 3일간 390만 달러(한화 약 46억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측된다. 16일까지 4140만 달러(한화 약 489억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북미에서 가장 흥행한 외국어 영화로 등극한 '기생충'은 '판의 미로'(2006·멕시코)를 제치고 역대 5위까지 올라설 전망이다. 많은 전문가는 5756만 달러(한화 약 680억원)의 기록을 가진 역대 2위 '인생은 아름다워'(2000·이탈리아)까지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카데미와 맞물려 개봉한 영국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영국 배급사는 아카데미 효과를 노려 개봉일을 잡는 일종의 도박을 감행했는데, 이 도박이 대박으로 이어졌다. 개봉 첫 주말인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약 140만 파운드(한화 약 21억 4000만원)를 벌어들이며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다. 영국에서 개봉한 외국어 영화 가운데 최고 기록을 세웠다. 기존 1위 기록을 갖고 있었던 '아포칼립토'에 비해 3분의 1 수준의 상영관을 확보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더욱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계속해서 상영관을 늘려갈 예정이어서, 북미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영어를 쓰는 나라의 관객들이 '기생충' 상영관을 이토록 많이 찾는다는 사실은 단순한 흥행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영어 영화에 익숙한, 좀처럼 자막을 보기 싫어하는 관객들에게 그 '장벽'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할리우드 리포터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두고 '게임 체인저'라고 표현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세계의 제작자들과 배급사들이 봉준호 감독의 승리를 희망과 갈망으로 주목하고 있다. 희망은 '기생충'의 성공이 다른 비 영어 영화들에 세계 최고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갈망은 할리우드 바깥의 영화들이 세계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 영화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까지 후원한 CJ그룹의 이미경 부회장은 해당 기사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넷플릭스가 거실에서 자막을 보도록 모두를 트레이닝했다면, '기생충'은 영화관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생충'의 유럽 배급사 관계자는 '기생충'이 불러온 현상이 전 아시아권 영화로 퍼져나가는 밴드웨건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관객에게 자막을 보도록 만드는 일은 10년 전만 해도 거대한 도전이었다. 이젠 일반적인 일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