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MLB, 부정에 온정 베풀다가는…

    [김식의 야구노트] MLB, 부정에 온정 베풀다가는…

    [일간스포츠] 입력 2020.03.0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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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가 지난달 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휴스턴 구단의 사인 훔치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가 지난달 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휴스턴 구단의 사인 훔치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신시내티 레즈의 괴짜 투수 트레버 바워(29)는 3일(한국시각) 미국 애리조나 굿이어 볼파크에서 열린 메이저리그(MLB) 시범경기 LA 다저스전에서 돌출 행동을 했다. 타자들에게 구종을 알려주면서 3이닝(무실점)을 던졌다. 시범경기라 해도 매우 이상한 행동이었다. CBS스포츠는 ‘바워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 훔치기를 조롱했다’고 썼다.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 논란이 MLB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많은 팬과 선수는 MLB 사무국의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사인 훔치기로 개인 기록을 향상하고, 챔피언 반지를 갖고, 더 많은 연봉을 받은 선수들이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7년 휴스턴은 홈구장 외야 펜스에 카메라를 설치해 상대 팀 사인을 파악했다. 투수 구종을 알아내 더그아웃 쓰레기통을 두드려 타자에게 전달했다. 휴스턴은 그해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다. 이런 사실은 휴스턴에서 뛰었던 선수 3명이 폭로해 세상에 알려졌다. MLB 사무국은 휴스턴의 거의 모든 선수가 이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휴스턴 제프 루노 단장과 A. J. 힌치 감독에게 1년 자격정지(휴스턴 구단은 둘을 해임) 처분했다. 또한 2년간 1, 2라운드 신인 지명권 박탈, 벌금 500만 달러(60억원)를 부과했다.
     
    MLB 사무국은 휴스턴 구단과 단장·감독에게는 관리 책임을 엄중하게 물었다. 하지만 “책임 범위를 가려내기 어렵다”며 휴스턴 선수들에게는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휴스턴 선수들은 내내 침묵하다가 지난달 14일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자 기자회견에 나타났다. 알렉스  브레그먼은 ‘잘못된 선택’ 등의 모호한 표현을 써가며 마지못해 사과했다.
     
    휴스턴 선수들은 욕을 먹을 뿐 실제로는 손해 본 게 없다. 이에 다른 선수들이 격분하고 있다. 휴스턴 타자에게 빈볼을 던질 거라고 경고하는 투수도 여럿이다. 휴스턴의 카를로스 코레아는 “말조심하라. (사인 훔치기를 고발한) 마이크 파이어스도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업자끼리 거친 언쟁을 벌이고 있다. 상황을 이렇게 악화시킨 건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다. 중재자·심판자의 책무가 있는 커미셔너가 처음부터 잘못 판단했다. 보통의 기업·단체라면 관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휴스턴 선수들은 범법으로 인해 가장 큰 이익을 본 당사자다.
     
    2017년 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에 패한 다저스 선수들을 중심으로 “휴스턴의 트로피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트로피를 빼앗아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건 금속 조각”이라고 말했다. 휴스턴 선수들은 충분히 비난받고 있으니 트로피를 빼앗아도 실효성이 없다는 취지였다. 결국 여론의 역풍을 맞고 사과했다. 시간이 갈수록 맨프레드 커미셔너의 의도는 명확해지고 있다. 휴스턴 선수들 잘못을 축소·은폐하는 것이다.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반창고만 붙이고 있다. 곪은 상처는 계속 덧나고 있다.
     
    부정으로 인한 결과물을 MLB 사무국이 회수하지 않는 한,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투수들은 진짜로 빈볼을 던질지 모른다. 휴스턴 팬들은 불매운동을 펼칠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리그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다. 공정하지 않은 스포츠는 ‘그깟 공놀이’이고, 반칙으로 얻은 트로피는 ‘그저 금속 조각’일뿐이니까.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