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되어도 최초” 책임감으로 나선 '언니들'은 담담하다

    ”누가 되어도 최초” 책임감으로 나선 '언니들'은 담담하다

    [일간스포츠] 입력 2020.03.25 06:00 수정 2020.03.25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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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농구 국가대표 사령탑 최종 후보로 선정된 전주원 아산 우리은행 코치(왼쪽)와 정선민 전 인천 신한은행 코치. WKBL 제공

    여자농구 국가대표 사령탑 최종 후보로 선정된 전주원 아산 우리은행 코치(왼쪽)와 정선민 전 인천 신한은행 코치. WKBL 제공



    "누가 되든 어차피 최초잖아요, 개의치 않아요."
     
    '언니들'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선수로서 한국 여자농구의 자존심을 걸고 코트에서 뛸 때도 그랬지만, 유니폼을 벗고 난 뒤에도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쉽게 벗기 힘들었다. 후배들을 위해 마침내 한 발 더 앞으로 나서기로 결심한 전주원(48) 아산 우리은행 코치나, 선배와 함께 지원할 수 있어 보람있고 뿌듯하다는 정선민(46) 전 인천 신한은행 코치, 둘 중 한 명은 그 무게 위에 '사상 첫 올림픽 구기 단체종목 여성 사령탑'이라는 책임감까지 얹게 된다. 하지만 언니들은 기꺼이 그 무게를 감수하고 도전에 나섰다. '올림픽 연기' 가능성이 현실화되며 발생한 변수도 언니들의 결심은 꺾지 못했다.
     
    전주원 코치와 정선민 전 코치는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 무대에 진출한 한국 여자농구 사령탑 공개 모집에 나란히 지원했다. 이문규 감독(64) 감독과 계약 만료 후 공석이었던 사령탑 자리에 지원한 이는 전주원, 정선민 코치를 포함해 김태일(60) 전 금호생명 감독, 하숙례(50) 신한은행 코치까지 총 4명.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지난 10일 열린 경기력 향상위원회에서 이들 중 전 코치와 정 전 코치를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한국 여자농구의 '레전드'인 두 코치의 사령탑 도전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올림픽 출전 사상 단체 구기 종목에서 최초의 한국인 여성 사령탑 탄생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여름과 겨울 올림픽을 통틀어 단체 구기 종목에서 여성 사령탑이 대표팀을 지휘한 건 2018 평창 겨울 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이끌었던 캐나다 국적의 세라 머리(32) 감독 뿐이다.
     
    그러나 전주원 코치는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둘 중 누가 되더라도 어차피 올림픽 최초 여자 감독이 되는 것 아닌가"라며 웃었다. 전 코치의 말대로 대표팀 사령탑에 지원한 두 코치에겐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 최초의 한국인 여성 사령탑'이라는 영광보다 더 중요한 동기가 있다. 책임감과 자존심이다. 올림픽 1호 트리플더블의 주인공인 명 포인트가드 전주원, 그리고 '바스켓 퀸' 정선민은 한국 여자농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현역 시절 신한은행에서 함께 뛰며 신한은행을 리그 최강으로 이끌었고, 2000 시드니 올림픽 4강을 합작했던 두 선후배 '전설'들은 유니폼을 벗은 뒤에도 코치로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며 여자농구 발전을 위해 뛰어왔다.
     
    올림픽 본선 티켓을 거머쥐는 과정에서 불거진 혹사 논란과 그 후폭풍으로 인해 후임 감독 선임 작업이 난항을 겪고, 영광이어야 할 사령탑 자리가 '독이 든 성배'라 불리는 상황은 두 '언니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후배들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12년 만에 올림픽에 복귀하는 한국 여자농구의 자존심이 타올랐다. 정선민 전 코치는 "과거 한국 여자농구는 국제 경쟁력도 높았는데 최근 팬 여러분들로부터 실망과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다. 이제 한국 여자농구도 변해야 한다"고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각오를 전했고, 전주원 코치도 "누가 되든 한국 여자농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돕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도쿄 올림픽이 연기된다면 한국 여자농구 올림픽 사령탑 선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올림픽 조 추첨식이 지난 18일 무기한 연기된 데 이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을 1년 연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전 코치는 "지금으로선 협회도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라며 "올림픽 연기로 전임 감독제를 하게 되면 (정)선민이가 맡는 것이 좋지 않겠나"는 의견을 전했다. 올림픽까지 장기적인 여유가 생기는 만큼, 보다 장기적으로 팀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농구계도 한국 여자농구를 위해 다시 한 번 일어난 언니들의 도전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 농구 관계자는 "두 사람 중 누가 되더라도 한국 여자농구에는 큰 획을 긋는 일이 될 것이다. 올림픽은 결코 쉽지 않은 무대지만, 설령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더 먼 곳을 보고 장기적으로 여성 지도자들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