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공으로 느리지 않게 90승 도착한 유희관

    느린 공으로 느리지 않게 90승 도착한 유희관

    [중앙일보] 입력 2020.06.0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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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희관(34·두산 베어스)은 지난 2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 6이닝 7피안타(1홈런) 1볼넷 2탈삼진 4실점을 기록했다. 안타를 많이 맞았고, 실점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또 이겼다. 두산이 11-8로 승리하면서 유희관은 시즌 3승(1패)째를 따냈다.
     
    유희관이 지난달 27일 SK와의 홈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뉴스1]

    유희관이 지난달 27일 SK와의 홈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뉴스1]

    여느 등판과 다르지 않은 이날, 유희관의 승리는 꽤 의미있었다. KBO리그 역대 37번째로 통산 90승을 달성한 것이다. 유희관은 "프로에 와서 선발로 뛸 거란 생각을 못했다. (수비력과 득점력이 좋은) 두산을 만나 기록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유희관은 중앙대를 졸업하고 2009년 두산에 입단했다. 2년 동안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상무 야구단에 입단했다. 제대 후 2013년 중반부터 선발 투수로 뛰었다. 그리고 지난해까지 매년 10승 이상을 거뒀다.
     
    KBO리그에서 유희관보다 오랫동안 10승 이상을 기록한 투수는 많지 않다. 이강철(1989∼98년, 10년 연속) KT 감독, 정민철(1992∼99년, 8년 연속) 한화 단장, 두산 장원준(2008∼17년, 8년 연속, 2012·13년은 군 복무)에 이어 역대 네 번째 기록이다. 2015년(18승)을 제외하고는 15승을 올리기도 버거웠다. 2018년에는 평균자책점 6.70으로 크게 부진했는데도 10승에 턱걸이했다. 올해도 10승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유희관은 '느린 공'으로 유명한 KBO리그의 유일한 투수다. 패스트볼 평균 스피드가 시속 130㎞ 정도. 대신 120㎞대의 싱커와 슬라이더, 100㎞ 이하의 슬로 커브를 효과적으로 배합한다.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이 유희관의 피칭을 중계하다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NC 다이노스 전에서 유희관이 3회 초 박민우 타석 때 시속 77㎞ 커브를 던지자, 미국 해설위원 에두아르도 페레스(51)가 "나도 (저 공을) 칠 수 있겠다"며 덤볐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 14년 동안 뛴 페레스라고 해도 지금 유희관의 피칭을 공략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유희관의 공은 만만해 보이지만 쉽게 치지 못한다. 그의 패스트볼 수직 무브먼트는 KBO리그 최상위권이다. 타자가 예측하는 것보다 그의 투구가 솟아오르는 것 같은 착각(실제로는 덜 떨어지는)을 일이키는 것이다.
     
    게다가 유희관의 디셉션(deception·공을 던지기 직전까지 숨기는 기술)도 뛰어나다. 여기에 정교한 제구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유희관의 130㎞ 패스트볼은 상당히 위력적이다. 유희관은 "(내 공이 느리지만) 나와 포수를 믿고 던진다. 내 공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유희관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은 두산에서 뛰는 때문에 선발로 10승 이상을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선발진에서 유희관의 순서는 외국인 투수 2명, 장원준 다음이었다. 잘하면 4선발, 어떨 땐 5선발이었다. 2년 전부터는 젊은 투수 이영하가 떠올랐다.
     
    그래도 유희관은 자기 자리에서 자기 공을 던진다. 올 시즌 두산에서 그가 거둔 3승은 알칸타라(4승1패) 다음이다. 그의 평균자책점 3.86은 플랙센(2.61) 다음이다. 현재 두산 선발진에서 유희관처럼 8년 동안 꾸준하게 자리를 지킨 투수가 없다. 그 덕분에 두산의 선발진이 무너지지 않았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