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보조서 4할 타자로…조용호 인생역전

    주방 보조서 4할 타자로…조용호 인생역전

    [일간스포츠] 입력 2020.06.0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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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 무명 외야수 조용호가 강백호·유한준의 부상 공백을 메우고 있다. 프로 구단 지명을 받지 못했던 그는 야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연습생부터 다시 시작했다. [뉴스1]

    KT 무명 외야수 조용호가 강백호·유한준의 부상 공백을 메우고 있다. 프로 구단 지명을 받지 못했던 그는 야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연습생부터 다시 시작했다. [뉴스1]

    올 시즌 프로야구 타격 주요 순위표 상단에는 낯선 이름이 하나 있다. KT 위즈 외야수 조용호(31)가 3일 현재 타율 0.418로 2위에 올랐다. 출루율(0.500)과 결승타(5개) 부문에서는 1위다.

     
    2017년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고 1군 무대를 밟은 조용호는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풀타임을 경험한 적이 없다. 지난해 87경기에 뛴 것이 개인 최다 출전 기록이었다. 뒤에서 주전 선수들을 조용히 도왔던 백업 선수 조용호가 올 시즌 초 강력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 KT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지난달 간판타자 강백호(21)가 왼손목, 베테랑 유한준(39)이 오른쪽 내전근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중심타선의 공백을 조용호가 잘 메웠다.

     
    지난달 17일 수원 삼성 라이온즈전을 시작으로 그는 3번타자를 맡고 있다. 이후 14경기 동안 절정의 타격감을 뽐내고 있다. 조용호의 방망이는 승부처에서 더 날카로워졌다. 나성범(NC 다이노스)과 로베르토 라모스(LG 트윈스·이상 결승타 4개) 등을 제치고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결승타를 쳤다. 이강철 KT 감독은 “조용호는 보석 같은 존재다. 중요할 때 해결해줄 수 있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조용호는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야구 인생은 이미 한 번 끝난 적이 있다.

     
    조용호는 야탑고 시절 촉망받는 내야수였다. 하지만 단국대 4학년 때 오른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어 1년간 제대로 뛰지 못했다. 외야수로 전향한 뒤에도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뛰며 프로 입단을 꿈꿨지만, 발목 부상이 재발하면서 팀을 나왔다.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그는 “야구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평생 야구만 했던 청년이 사회에서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우유와 피자 배달, 중국집 주방 보조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렇게 야구에서 점점 멀어지자, 더더욱 야구가 하고 싶어졌다. 조용호는 대학 시절 코치를 찾아가 “야구만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2014년, 25세 나이에 SK 육성선수(연습생)가 됐다. 19~20세 선수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 덕분에 이듬해 정식선수가 됐고 퓨처스(2군) 올스타전에도 나갔다.

     
    조용호는 만족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1군을 목표로 뛰었다. 마침내 2017년, 김강민이 부상으로 1군에서 빠지자 그가 기회를 얻었다. 그토록 원했던 1군 무대에서 조용호는 69경기를 뛰며 타율 0.272를 기록했다. 1군에서도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조용호의 2018년 타율은 16경기에서 0.077에 그쳤다. 2군에 있을 때만큼 절박하게 훈련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 사이 SK 외야 자원이 많아졌다. 결국 염경엽 SK 감독은 “조용호가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하길 바란다”며 그를 대가 없이 KT로 보냈다.

     
    조용호는 다시 벼랑 끝에 섰다. 첫아들을 얻으면서 책임감도 커졌다. 지난해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낙오돼 2군 훈련지인 대만으로 가야 했다. 20대 나이에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1군에 늦게 올라가겠지만, 대신 끝까지 남아 있자”고 다짐했다. 그는 콘택트 능력을 키웠고, 지난해 5월 1군에 올라왔다.

     
    그는 타석에서 공 하나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까다로운 투구는 파울로 걷어냈고, 평범한 땅볼을 때려도 1루까지 이를 꽉 물고 뛰었다. 끈질긴 그의 모습에 KT팬들은 크게 감동했다. 조용호는 지난 시즌 끝까지 1군에서 활약하며 타율 0.293를 기록했다.

     
    올 시즌 조용호의 타격 성적은 수직 상승했다. 그러나 그의 자세는 여전히 낮다.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런데 그 기회를 꼭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죽기 살기로 뜁니다.”

     
    중국집에서 설거지하던 조용호의 활약을 보면서 야구 팬들도 큰 자극을 받는다고 한다.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힘들지만 나도 열심히 살아야 겠다”, “울림을 주는 조용호야말로 진정한 프로”라는 글들이 꽤 많이 올라와 있다. 팬들은 조용호의 4할 타율보다 그의 의지에 더 감동하고 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