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던’도 예술 이정후, 홈런치는 바람의 손자

    ‘빠던’도 예술 이정후, 홈런치는 바람의 손자

    [일간스포츠] 입력 2020.06.22 08:58
    글자크기
    글자크기 키우기 글자크기 줄이기
    20일 고척 SK전에서 홈런을 친 뒤 배트 플립을 하는 키움 이정후. 오프시즌 동안 근육량을 늘려 장타력을 키웠다. [사진 키움 히어로즈]

    20일 고척 SK전에서 홈런을 친 뒤 배트 플립을 하는 키움 이정후. 오프시즌 동안 근육량을 늘려 장타력을 키웠다. [사진 키움 히어로즈]

     
    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 경기 8회 말. ‘바람의 손자’ 이정후(22·키움 히어로즈)가 스리런 홈런을 날렸다. 이정후가 휘두른 방망이는 “딱” 소리가 나면서 어깨 뒤로 젖혀졌다. 반동으로 다시 살짝 위로 올라오던 방망이는 그대로 손에서 떨어져 포물선을 그렸다. 그리고 멀리 날아갔다. 미국 야구팬이 봤으면 “그의 방망이는 아직도 날고 있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멋진, 미국식으로 하면 ‘배트 플립(bat flip)’, KBO리그식으로 하면 ‘빠던’(빠따 던지기의 약어)이었다.
     
    이정후는 21일까지 42경기에서 홈런 7개를 쳤다. 프로에 데뷔했던 2017년 2홈런, 18, 19년에는 6홈런씩을 쳤다. 그랬던 그가 올 시즌 일정의 30%를 지나면서 한 시즌 개인 최다홈런을 경신했다. 어느덧 배트 플립도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다. 지난달 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시즌 첫 홈런을 터뜨렸을 때는 방망이를 던지지 못했다. 이후 점점 방망이 궤적이 매끄러워지더니, 웬만한 베테랑 거포보다 화려한 배트 플립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11년 홈런을 치고 배트 플립을 하고 있는 이종범. [중앙포토]

    지난 2011년 홈런을 치고 배트 플립을 하고 있는 이종범. [중앙포토]

     
    이정후는 21일 “직구가 들어와 풀스윙했는데 배트 플립으로 이어졌다. 경기 끝나고 영상을 봤는데, 내가 봐도 멋지더라. 아빠한테 ‘멋있지 않나’라고 물었는데, 아빠가 ‘아직 멀었다’고 했다”며 웃었다.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은 1990년대 배트 플립을 유행시킨 ‘빠던의 대가’였다. 빠르게 방망이를 돌려 휙 떨어뜨렸는데, 풍차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정후는 “앞으로는 배트 플립을 안 하려고 한다. 박병호 선배처럼 홈런 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방망이를 조용히 내려놓고 뛰겠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원래 교타자다. 키움에 오자마자 주로 1번 타순을 맡았고, 목표도 ‘출루율을 높이는 것’, ‘안타를 많이 치는 것’이었다. 톱타자 치고는 도루가 부족하다며, 2월 대만 스프링캠프에선 과감한 슬라이딩 훈련에 주력했다. 그런데 손혁 키움 감독은 올해 이정후를 3번 타순에 고정했다. 손 감독은 “이정후는 3번에서도 충분히 잘할 선수”라고 평가했다. 장정석 전 키움 감독도 “언젠가는 3번에서 해줘야 하는 선수”라며 지난해 6월부터 이정후를 종종 3번 타자로 기용했다.
     
    기대에 부응하듯, 이정후도 방망이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그 결과 홈런이 늘었고, 장타율도 올랐다. 지난 시즌까지 4할대였던 장타율이, 올 시즌에는 6할대다. 프로에 온 뒤, 근육량을 늘려 다부진 몸을 만든 효과를 보고 있다. 고교(휘문고) 시절 이정후는 키 1m85㎝, 몸무게 72㎏이었다. 호리호리한 몸매다. 본인도 “아빠를 닮아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말했다.
     
    프로에 온 뒤로 하루 너덧 끼를 먹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했다. 몸무게가 80㎏대에 진입했다. 늘어난 건 근육량 때문이었다. 이정후는 “웨이트 트레이닝 방법을 여러 가지 시도했는데 부상 위험이 있었다. 올해는 이택근 선배가 추천한 웨이트 트레이닝 방법으로 해봤는데, 몸에 잘 맞는다. 시즌 중이라 몸무게가 조금 빠졌지만, 근육량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야구선수는 체격이 좋아야 기술이 더 좋아질 수 있다. 이정후가 몸을 키우고 장타력을 장착한 것은 정말 좋은 시도”라고 칭찬했다.
     
    보통은 홈런이 늘면 타율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정후는 3할 중반대 타율을 유지한다. 그는 “나는 ‘장타를 치면 타율이 깎인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장타와 타율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과 미국 선수 중 장타와 타율 기록이 다 좋은 선수 타격 영상을 찾아본다. 강하게 치면서도 폴로 스루(follow through) 잘하는 왼손 타자 야나기타 유키(소프트뱅크)와 요시다 마사타카(오릭스) 타격 영상을 매일 돌려본다”고 소개했다.
     
    현재 추세라면 산술적으로 이정후는 올 시즌 20홈런 이상 기록할 수 있다. 그는 “올해 7홈런을 치겠다고 팬과 약속했는데 벌써 이뤘다. 앞으로 나오는 홈런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