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엔드게임] 예민하고 예리하다…박병호의 '검객 스윙'

    [김식의 엔드게임] 예민하고 예리하다…박병호의 '검객 스윙'

    [일간스포츠] 입력 2020.07.07 06:00 수정 2020.07.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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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호의 타격은 몸쪽 공과의 싸움이다. 그는 왼손 힘만으로도 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와 기술을 만들었다. IS 포토

    박병호의 타격은 몸쪽 공과의 싸움이다. 그는 왼손 힘만으로도 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와 기술을 만들었다. IS 포토

     
    타석에 선 박병호(34·키움)를 보고 어떤 포수는 "검객을 상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망이가 아닌 검을 들고 있는 위협감이 느껴진다는 뜻이었다.
     
    검은 빠르고 예리하다. 스치기만 해도 공을 박살 낼 것 같은 공포가 담겨 있다. 대신 정확하지 않다면, 허공을 가르기 십상이다. 치명적인 만큼 빈틈이 있다.
     
    박병호의 검은 300번 번뜩였다. 그는 지난 5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의 원정경기 5회 초 중월 투런포를 폭발했다. 2005년 LG에 입단한 그는 2011년 넥센(현 키움)으로 이적했다. 풀타임 10년 만에 KBO리그 역대 14번째로 통산 300홈런을 기록했다.
     
    KBO리그 통산 홈런은 단연 이승엽(467개)이다. 나이와 기량으로 볼 때 박병호는 최정(SK·346홈런)과 함께 이승엽에 이어 2위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리그 통산 2위는 양준혁(351홈런)이다.
     
    박병호는 양준혁·이대호(롯데·321홈런)·김태균(한화·311홈런)처럼 정확성과 파워를 겸비하지 못했다. 이승엽·최정 같은 슬러거 유형이다. 타격 전문가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박병호는 힘 쓰는 기술이 뛰어난 선수다. 힘과 기술, 그리고 노력까지 더해져 300홈런 기록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박병호의 스윙은 심플하지 않다. 타격을 할 때 토탭(toe tap·이동발의 뒤꿈치를 살짝 들었다가 발가락으로 착지)을 하며 타이밍을 잡는다. 여기에 레그킥(leg kick·이동발을 높이 들었다가 앞으로 내디디며 중심이동)도 한다. 보통 타자들은 둘 중 하나만 하지만, 박병호는 토탭 후 레그킥도 했다.
     
    프로세스가 복잡한 만큼 배팅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메이저리그(MLB) 미네소타 트윈스 시절(2016~17년) 이를 절감한 박병호는 레그킥 동작을 최소화했다. 그래도 여전히 하체 움직임이 많은 편이다. 투수들이 박병호에게 유독 몸쪽 공을 많이 던지는 이유는 이 빈틈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볼넷이나 사구를 주더라도 박병호의 몸쪽을 집요하게 공략하는 것이다.
     
    박병호는 거의 10년 동안 이를 고민해왔다. 단점(남들과 다른 스트라이드)을 고치는 대신, 강점(강하고 빠른 허리 회전)을 강화하는 방향을 잡았다. 두 팔꿈치를 몸통에 거의 붙인 채 회전, 방망이의 스위트 스폿에 공을 맞히는 것이다. 임팩트 후 오른손을 놓고, 왼손만으로 폴로 스루를 하는 장면이 많다. 이를 두고 이종열 위원은 "박병호가 (힘이 아닌) 기술로 홈런을 때린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박병호는 두 가지 약점을 노출했다. 기술적으로 문제는 배팅 타이밍이 자주 흔들린다는 점이다. 올 시즌에도 박병호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삼진(67개)을 당하고 있다.
     
     
     
    이종열 위원은 "타이밍은 모든 타자들이 다 겪는 문제이다. 홈런 타자여서 더 크게 보일 뿐"이라고 했다. 보통 타자들이 하나-둘-셋의 리듬으로 친다면, 박병호는 하나(토탭) 다음에, 다시 하나(레그킥)-둘-셋의 리듬으로 타격한다. 이종열 위원은 "선수마다 신체적 특성이 달라서 타격의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박병호는 지금까지 이 리듬으로 잘해왔기 때문에 바꿀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약점은 예민한 성격이다. 성실하고 반듯한 그는 패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강한 투수에게 삼진을 당하면 후회하고, 자책한다. 경기 전에 말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슬럼프에 한 번 빠지면 오래 머무는 이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박병호는 늘 부진에서 빠져나왔다. 해결책은 언제나 같다. 야구장에 가장 먼저 출근해서 훈련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심리적 충격에 매몰되지 않고, 기술적 해법을 찾는 것이다. 지난달까지 2할대 초반 타율에 그쳤던 박병호는 7월 5경기에서 18타수 6안타(3홈런)를 때려냈다. 왼발로 체중을 옮기며 허리를 회전하는 리듬을 찾은 덕분이다.
     
    투수가 박병호를 이길 방법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공 하나가 삐끗하면 '검객'의 검이 번쩍인다.
     
    지난달 25일 LG는 5-4로 앞선 9회 초 1사 2·3루에서 이정후를 고의볼넷으로 박병호와의 승부를 택했다. 박병호는 LG 투수 정우영의 초구(바깥쪽 투심패스트볼)를 밀어 서울 잠실구장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검객의 '한칼'이 빛난 장면이었다.   
     
    김식 스포츠팀장 se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