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IS] 누가 '69세' 할머니에게 평점 테러를 가하나

    [무비IS] 누가 '69세' 할머니에게 평점 테러를 가하나

    [일간스포츠] 입력 2020.08.24 08:00
    글자크기
    글자크기 키우기 글자크기 줄이기
    '69세'

    '69세'

    영화 '69세(임선애 감독)'가 평점 테러의 희생양이 됐다.  
     
    전국에서 겨우 96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는 작은 독립영화 '69세는 지난 20일 개봉해 3일간 4074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이 영화에 평점을 남긴 네티즌은 6289명(23일 기준)이다. 관객 수보다 평점을 남긴 네티즌의 수가 더 많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낮은 평점을 부여하는 일부 '가짜 관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왜 '가짜 관객'이 등장했으며, 이들은 이 영화에 왜 별 반 개를 주며 부정적인 평가를 남기고 있는 것일까. 예수정과 기주봉, 평소 논란과는 거리가 먼 배우들이 출연하는데도 왜 댓글창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69세'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69세의 할머니 효정(예수정)이 부당함을 참지 않고 햇빛으로 걸어나가 참으로 살아가는 결심의 과정을 그린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관객상을 수상했다. 부산에서 이미 한 차례 관객의 인정을 받은 작품. 성폭력의 피해자가 된 여성 노인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우리 사회에 살아남은 여성 그리고 노인이 감내해야 하는 시선과 편견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명확한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임선애 감독은 지난 2013년 우연히 여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관련 칼럼을 읽은 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시나리오에 피해자가 여성 노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외면해왔던 문제를 묵직하게 그려냈다. 임 감독은 "우리 사회가 노인과 여성을 분리하고 그들을 무성적 존재로 보는 편견 때문에 가해자의 타깃이 된다는 내용을 보고 '악하다'고 생각했다"며 "노년의 삶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인간 존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별 반 개로 평가하는 일부 네티즌은 임 감독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시나리오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성폭력의 가해자가 젊은 남성, 피해자가 노인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페미니즘을 설파한다"는 것이 이 '일부 네티즌'의 의견이다. 영화 속에서 효정의 쉽지 않은 고백에도 경찰과 주변인들이 효정을 치매 환자 취급하며 무시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법원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나이 차를 이유로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가해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2차 가해를 가하는 행위다. 그리고 '일부 네티즌'도 주변 어디선가 살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평점 테러와 거친 댓글로 2차 가해를 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심각의 문제로 대두한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 이런 분위기 가운데 '69세'는 격화된 남녀간 성 대결의 전쟁터가 돼 버렸다. '69세'가 어떤 시선을 가진, 어떤 화두를 던지는 영화인지는 관심 밖이다.  

     
    앞서 '82년생 김지영' 등 여성주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들이 '69세'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영화를 만든 입장에서는 썩 반가운 일이 아닐 터다. 그럼에도 '69세' 측은 평점 테러를 오히려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69세' 측은 "영화적인 완성도와는 별개로 영화의 소재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집단이 등장했다. '소설 쓰고 있다'라는 말로 비하하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편견과 차별을 실제로 고스란히 자행하고 있다"며 "이들의 행태로 영화의 평점이 2점대까지 내려갔지만,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깨어있는 관객들이 응원을 보내 평점이 7점대까지 다시 올라갔다"고 적극적으로 알렸다.  
     
    '69세'는 험난한 과정에서도 묵묵히 새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응원단으로 나선 민규동 감독은 "제목처럼 노인이 주인공인 영화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데, 그래서 더 반가운 영화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놓여있는 우리 삶의 모습, 잘 살펴보지 못했던 그늘을 보는 것이 모두에게 훌륭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멋진 화두의 영화"라고 평했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