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야구학]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선동열 야구학]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일간스포츠] 입력 2020.09.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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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스포츠가 창간 51주년 특별기획 ‘선동열 야구학’을 연재합니다.
     
    ‘선동열 야구학’은 야구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야구를 새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국보 투수로, 프로야구 감독으로, 국가대표 코치·감독으로 지낸 과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40년 넘게 축적된 ‘선동열 야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인 투수 파트 외에도 타격과 수비, 작전 등을 폭넓게 경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프런트 오피스 미팅을 통해 구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할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연수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온택트(ontact)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MLB를 공부했고, 오프라인에서 야구장 밖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수개월 동안 야구를 공부하면서 선동열 전 감독은 새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봤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았던 정보를 데이터를 통해 재해석 했습니다. 그의 여정을 일간스포츠가 따라갑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야구는 시속 100마일(161㎞)의 강속구 시대를 맞이했다. 미국에서 투수가 시속 160㎞ 이상의 공을 던지는 것은 더는 뉴스가 아니다. 메이저리그(MLB)와 마이너리그를 포함하면 100마일 투수가 1000~1500명 정도 있다고 한다.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시속 160㎞가 넘는 강속구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그런 공을 던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또 타자들은 그 공을 쳐 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찾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시속 160㎞는 내가 한 번도 던진 적이 없는 공이다. 그러나 MLB와 일본 야구에서 꽤 많은 투수가 던지고 있다.
     
    KBO리그에는 왜 160㎞를 던지는 투수가 없는 것일까? 내 야구 공부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했다.
     
    MLB ‘스탯캐스트’에 패스트볼 속도 대비 타율 기록이 있다. 2018년 MLB 타자들은 92마일(148㎞)의 공을 때렸을 때 타율 0.283, 출루율 0.364, 장타율 0.475를 기록했다. 148㎞도 빠른 공에 속하지만, 타자들이 곧잘 대응했다.
     
    자료=스탯캐스트

    자료=스탯캐스트

     
    투수의 공이 빨라질수록 타자의 기록이 점차 나빠졌다. 101마일(163㎞)의 패스트볼에는 타율 0.198, 출루율 0.257, 장타율 214에 그쳤다. 기록에서 볼 수 있듯, 강속구는 역시 최강의 무기다.
     
     
    투수의 체격과 비례하는 ‘강속구’


    MLB를 보면 ‘강속구의 시대’를 실감할 수 있다. 뉴욕 양키스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를 받고 지난달 돌아오자마자 163㎞의 패스트볼을 던졌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시즌이 치러지는데도, 올 시즌 MLB에서 161㎞ 이상의 공을 던진 투수는 10명이 넘는다. 브루스더 그라테롤(LA 다저스)은 161㎞ 싱커를 던졌다.
     
    특출한 투수의 공만 빨라진 게 아니다. MLB 투수 전체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02년 143㎞였던 게 2019년 149.8㎞로 올라갔다.
     
     
    MLB 구성원들은 강속구가 야구 자체를 바꿨다고 보고 있다. 2018년은 150년 MLB 역사상 처음으로 삼진(총 2430경기에서 4만1207개)이 안타(4만1018개)보다 많은 시즌이었다. KBO리그가 역사적인 타고투저(打高投低) 시즌을 보내는 동안 MLB 투수의 강속구는 타자를 압도했다.
     
    이 현상은 2019년(4만2039안타, 4만2823삼진) 더 심화했다. 2019년 MLB 전체 타율(0.245)은 1972년 이후 가장 낮았다. 올해도 이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MLB 투수들의 공은 왜 빨라지는 것일까. 그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MLB를 대표하는 투수 클레이턴 커쇼(LA 다저스)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스피드의 증가는 게임의 진화일 뿐이다. 축구나 농구 선수들도 더 커지고, 강해지고, 빨라지고 있다. NFL(미국 프로풋볼리그) 선수의 운동능력을 보라. 야구 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선수들은 어느 세대보다 좋은 체격을 타고났다. 어려서부터 영양을 충분히 섭취했고, 과학적인 체력 훈련을 받았다.
     
    일부 선수들은 부모의 지원을 받아 사설 기관에서 훈련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좋은 체격을 물려받은 데다, 체계적인 트레이닝 환경까지 제공받는 것이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MLB에서 활약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웨이티드볼(Weighted ball, 실제 공보다 두 배 무거운 훈련용 공)을 이용해 몇 주 동안 구속을 5㎞ 정도 늘려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체격의 향상이 ‘100마일 시대’를 열었다는 가설은 틀림없는 것 같다. MLB 투수들의 스피드는 체격과 함께 증가했다. 2019년 MLB 투수들의 평균 신체는 키 192㎝, 몸무게 98㎏이다. 미국인들은 원래 체격이 좋았을 것 같은데, 2000년(189㎝·98㎏), 1960년(186㎝·86㎏) 자료와 비교하면 차이가 꽤 난다.
     
     
    전설적인 투수 놀란 라이언(73)은 1974년 세계 최초로 100마일이 넘는 공을 던졌다. 1970~80년대 MLB를 주름잡았던 그는 많은 투수들의 우상이자, 거인이었다. 라이언의 프로필을 보니 키가 188㎝, 몸무게가 86㎏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MLB 투수의 평균 체격이다.
     
    현재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 중 하나인 채프먼(193㎝·98㎏)은 다른 투수들보다 뛰어난 하드웨어를 갖고 있다. 체격과 근력은 대체로 비례한다. 근력이 좋아지면 더 강한 공을 던질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팔과 다리가 길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던질 수 있다.
     
    일본도 ‘속도 경쟁’ 중이다


    그렇다면 한국인과 비슷한 체격 조건을 가진 일본 투수들은 어떨까?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NPB)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스피드는 143.7㎞였다. 일본 투수들의 구속도 우상향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상위 투수들은 ‘100마일 시대’를 이미 열었다. 2010년 사토 요시노리(당시 야쿠르트)가 NPB 최초로 161㎞를 던졌다. 최근에는 센가 고다이(소프트뱅크), 타이라 카이마(세이부), 후지나미 신타로(한신) 등이 160㎞를 돌파했다.
     
     
    일본 최고 구속은 MLB에 진출한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가 2016년 니혼햄 시절 기록한 165㎞다. 고교 시절에 이미 160㎞를 던진 19세 사사키 로키(지바 롯데)는 “오타니 선배를 넘어 170㎞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일본 야구는 전통적으로 정교한 제구와 수직 무브먼트를 강조한다. 동시에 강속구에 대한 열망도 가지고 있다. 일본의 톱클래스 투수들을 보면 MLB 못지않은 힘과 스피드를 갖고 있다. 오타니(193㎝·92㎏), 센가(187㎝·90㎏), 후지나미(197㎝·89㎏), 로키(190㎝·85㎏) 등이 그렇다.
     
    사토(179㎝·80㎏)와 타이라(173㎝·100㎏)의 체격은 그리 크지 않다. 사토는 늘 부상에 시달리고 있고, 타이라는 아직 21세다. 즉 ‘MLB급 구속’을 내는 아시아 투수들은 대부분 ‘MLB급 체격’을 갖췄다.
     
    일본 선수들의 구속 향상을 보면 KBO리그 투수들의 정체가 더욱 와 닿는다.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구위로 타자를 압도하는 투수들을 거의 찾기 어려워졌다. 선발 투수 중에서는 최고 150㎞를 던지는 구창모(NC), 불펜 투수 중에서는 157㎞를 기록한 적이 있는 조상우(키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KBO리그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2019년 기준)은 141.9㎞에 불과하다. 이는 2002년 MLB 투수들의 패스트볼보다도 느리다. 2019년 MLB 기록과는 7.9㎞ 차이가 난다. 그리고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여기에도 여러 이유가 있다. 2010년 전후만 해도 한국 투수들의 체격이 일본 선수들을 앞섰다고 봤다. 최근엔 그렇지도 않다. 일본 야구의 저변이 워낙 넓어서 뛰어난 체격과 재능을 가진 투수들이 많이 프로에 입단하고 있다.
     
     
    스피드 향상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스피드는 천부적인 소질이라고 믿는다. 프로야구에 입단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투수가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스피드는 5㎞ 정도라고 본다. 그것도 좋은 지도자를 만나고, 선수가 엄청나게 노력해야 가능하다. 열심히 빠른 공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에게는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그건 엄연한 현실이다.
     
    원석이 좋아야 세공을 거쳐 훌륭한 보석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KBO리그가 원석을 그대로 두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현재 KBO리그 투수들의 체격은 향상되고 있다. 예전에 비해 투구 수를 관리하고, 트레이닝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KBO리그 투수들의 패스트볼 구속은 10년 가까이 정체돼 있다.
     
    나는 그 이유를 투수들의 훈련법과 투구 폼에서 찾는다. KBO리그 투수들 가운데 하체 중심 이동이 자연스러운 투수가 많지 않다. 스트라이드가 안정적인 투수가 릴리스 때 어깨와 팔꿈치를 수평으로 만들 줄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진=중앙포토

    사진=중앙포토

     
    선수 시절 내 폼도 완벽하지 않았다. 몸 전체가 구부러져(arching) 부담이 가는 자세였다. 그러나 내 몸에 맞는 폼으로 조금씩 바꿔가며 최적의 밸런스를 찾으려 했다.
     
    이런 이유로 내가 투수코치나 감독을 할 때 선수에게 내 폼을 참고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각자의 신체와 특성이 다양한 만큼, 힘을 모으고 폭발하는 메커니즘은 각자 다르다. 선수들과 함께 고민하며 밸런스를 찾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다.
     
    투구 밸런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튼튼한 하체를 바탕으로 하는 기본기다. 이건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은퇴할 때까지 소홀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KBO리그의 ‘원석’은 여기에서부터 흠집이 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따로 설명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지금 KBO리그 투수들은 어떤 방향으로 노력해야 할까? 최고의 무기 강속구를 갖기 위해 당장 웨이티드볼을 던지고, 무거운 역기를 들어야 할까? 시속 5㎞라도 스피드를 늘리려고 무슨 수라도 써야 할까?
     
    그래서 평균 140㎞의 패스트볼을 던졌던 투수가 145㎞를 던질 수 있게 됐다면? 코치나 감독은 최강의 무기를 가진 그 투수를 당장 활용해야 할까?
     
    아니다. 내 것이 아닌 무기를 욕심내다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