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야구학]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선동열 야구학]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일간스포츠] 입력 2020.09.23 06:00 수정 2020.09.2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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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스포츠가 창간 51주년 특별기획 ‘선동열 야구학’을 연재합니다.
     
    ‘선동열 야구학’은 야구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야구를 새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국보 투수로, 프로야구 감독으로, 국가대표 코치·감독으로 지낸 과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40년 넘게 축적된 ‘선동열 야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인 투수 파트 외에도 타격과 수비, 작전 등을 폭넓게 경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프런트 오피스 미팅을 통해 구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할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연수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온택트(ontact)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MLB를 공부했고, 오프라인에서 야구장 밖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수개월 동안 야구를 공부하면서 선동열 전 감독은 새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봤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았던 정보를 데이터를 통해 재해석 했습니다. 그의 여정을 일간스포츠가 따라갑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메이저리그(MLB)에 강속구 투수들이 대거 등장하자 많은 이들이 “야구의 매력인 투수와 타자의 균형이 깨졌다”고 말했다. 투수의 힘이 타자를 압도하고 있으며, 타자는 힘겹게 투수를 따라잡기 바쁘다는 것이다.
     
    지난해 MLB 전체 삼진 기록은 9이닝 평균 8.78개였다. 이 기록만 보면 MLB 타자들은 로저 클레멘스 같은 투수를 매 경기 상대했다고 볼 수 있다. 1984년부터 2007년까지 MLB에서 354승(MLB 역대 9위)을 올린 클레멘스는 ‘로켓맨’이라고 불릴 만큼 위력적인 공을 던졌다. 그가 기록한 탈삼진은 통산 4672개(MLB 역대 3위), 9이닝 평균 8.55개였다.
     
    타자들의 체격과 기술도 향상됐지만, 갈수록 빨라지는 패스트볼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투수가 타자를 압도하려는 순간, 타자도 반격 무기를 찾았다. 투수의 공격, 그리고 타자의 반격은 150년 야구 역사에서 늘 반복된 일이다. 그게 야구의 묘미다.
     
    강속구의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한 타자들의 인식 변화를 MLB에서는 ‘플라이볼 혁명(fly ball revolution, 타구의 발사 각도를 높이는 움직임)’이라 부른다. 이 단어를 처음 보고 조금 놀랐다. 야구팬들에게 플라이볼(뜬공)이 낯선 단어도 아닌데, 혁명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플라이볼 혁명은 2017년 전후로 MLB에 등장한 이론이다. 요즘에는 KBO리그와 일본에서도 화제다. 어느 리그를 막론하고 홈런 선두권에 있는 타자들은 대부분 어퍼컷(uppercut, 투구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스윙을 한다. 중심타자가 아닌 선수들도 유행처럼 따라 하고 있다.
     
    타자들이 어퍼컷 스윙을 하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수비 시프트가 발전하면서 땅볼을 쳐봐야 아웃될 가능성이 커졌고 ▶투수들이 투심 패스트볼, 체인지업 등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많이 던지고 있어 타자의 스윙 궤적이 달라질 필요가 있었으며 ▶어느 때보다 강해진 투수를 이겨내기 위해 타자는 연속 안타가 아닌 장타를 노리는 전략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구속과 홈런의 동시 증가


    지난해 워싱턴을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끈 맥스 슈어저는 “강속구 투수를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펜스를 겨냥하고, 홈런을 노리는 것이다. 요즘 투수들은 너무 빠른 공을 던진다. 그리고 끔찍한 변화구를 갖고 있다. 6타자 연속 안타 같은 장면은 더는 나오지 않는다. 연속 안타를 기대하는 건 최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야구는 그렇게 변했다. 땅볼이 아니라, 뜬공을 날려야 타자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여러 데이터가 입증하고 있다. 타자들은 어떤 대가(삼진)를 치르더라도 타구를 띄워야 한다는 게 플라이볼 혁명의 핵심이다.
     
    MLB의 최근 데이터를 보면 이런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자들이 삼진을 더 자주 당하고 반면, 홈런 또한 증가하는 것이다.
     
    2015년 MLB 타자들은 한 타석에서 삼진을 당할 확률이 20.4%였다. 이 수치가 점점 올라 지난해에는 23.0%를 기록했다.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스피드와 비례해 삼진률이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MLB의 홈런이 늘어난 건 놀라운 변화였다. 2015년 0.027개였던 타석당 홈런이 점차 증가해 지난해 0.037개가 됐다. 2019년 MLB 정규시즌 2430경기에서 6776홈런이 쏟아졌다.
     
    마크 맥과이어가 70홈런, 새미 소사가 66홈런을 때린 1998년(5064홈런)보다 훨씬 더 많은 홈런이 나오고 있다. 단축 시즌으로 치러지는 올해는 타석당 홈런이 0.035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적잖은 MLB 타자들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약물의 시대’보다 ‘강속구의 시대’에 홈런이 더 많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MLB 전문가들은 여러 시각으로 이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공인구의 변화다. 공의 가죽이 매끄러워졌고, 솔기 높이가 낮아져 타구가 공기저항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MLB 사무국은 “공의 반발력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해명했다. 여기에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홈런만 늘었을 뿐 MLB 타자들은 투수에게 여전히 밀리고 있다. 2015년 0.254였던 리그 전체 타율은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2017~18년 KBO리그에서는 홈런과 타율이 동시에 늘어났다. KBO는 이를 공인구 반발력을 낮추는 정책으로 불균형을 해소했다.
     
    MLB에서 홈런이 급증한 것이 공인구의 반발력 때문이었을까. MLB 전체 타율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으니, 이 주장의 설득력은 떨어져 보인다. 따라서 플라이볼 혁명이 홈런의 증가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우리 세대는 지도자들로부터 “다운 스윙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가장 까다롭게 생각한 타자 고(故) 장효조 선배도, 팀 동료여서 든든했던 이종범도 공을 벼락같이 내려쳤다.
     
    타자들은 보통 어깨 높이에서 배트를 쥔다. 여기서 최단 거리로 투구를 때리려면 다운컷(downcut, 투구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스윙을 해야 한다. 그래야 투구 속도와 변화에 잘 대응할 수 있다고 배웠다.
     
    반면 어퍼컷을 하려면 스윙 궤적이 내려왔다가 올라와야 한다. 과거에는 비효율적인 타격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뜬공을 강조하는 최근의 흐름은 꽤 낯설다. 이는 MLB에서 감독이나 코치를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모양이다.
     
     
    발사각과 홈런의 상관관계


    타자 입장에서는 삼진을 많이 당하더라도 어퍼컷을 날려야 한다. 아주 잘 맞으면 홈런이 된다. 2루타나 3루타가 나올 수 있다. 외야가 내야보다 넓으니 수비 실책도 나올 가능성도 커진다.
     
    리그 전체의 타격 성적과 타구 발사각(launch angle) 사이에는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보인다. 데이터를 보고 나서야 나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발사각이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게 연구의 대상인 적은 내 기억에 없었던 것 같다. 발사각은 말 그대로 배트에 맞은 타구가 발사되는 각도다. 그라운드와 수평으로 날아간 타구의 발사각은 0도이고, 땅볼이면 마이너스 값이 나온다.
     
    유명한 야구 서적 『야구의 물리학』은 타구가 최대 비거리를 낼 수 있는 발사각이 35도라고 썼다. 그러나 2015년 MLB 팬들에게 공개된 타구 추적 시스템 ‘스탯캐스트’는 최대 비거리를 낼 수 있는 발사 각도가 25~30도라는 걸 데이터로 보여줬다.
     
    스탯캐스트의 레이더 기술을 통해 MLB 경기에서 나오는 타구를 여러 전문가가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이로 인해 선수와 코치들은 어떤 타구가 가장 효율적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스탯캐스트의 원년인 2015년 MLB 타구의 평균 발사각이 10.9도였다. 땅볼은 마이너스 값이 나오기 때문에 평균 발사각이 이 정도인 것이다. 타구의 발사각은 2016년 11.6도, 2017년 11.8도로 올라갔다. 올해는 13도에 육박하고 있다. 홈런과 비례해 함께 늘어나고 있다. 이 변화는 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플라이볼 혁명기에 성적이 갑자기 향상된 타자들이 있다. 2015년 다니엘 머피의 평균 발사각은 11.1도였는데, 2016년 16.6도로 크게 높아졌다. 타율 0.281, 14홈런이었던 그의 성적이 1년 만에 타율 0.347, 25홈런으로 좋아졌다. 앤서니 랜던, 코디 벨린저 등 MLB 슈퍼스타들도 발사각을 올려 큰 효과를 봤다고 한다.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저스틴 터너(LA 다저스)는 플라이볼 혁명을 지지하는 가장 대표적인 선수 중 하나다. 지난해까지 류현진의 동료였기에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그의 기록을 찾아봤다.
     
    2013년까지 뉴욕 메츠에서 주전 선수가 되지 못한 터너는 2014년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이 시기에 스윙을 어퍼컷으로 교정한 후 다저스의 간판타자로 성장했다.
     
    2016년 터너는 전년보다 발사각을 3도 높였다. 2017년에는 1.4도 더 높여 그의 평균 발사각은 18.4도가 됐다. 리그 평균(11.8도)보다 6.6도 높았다.
     
    이 과정에서 터너의 홈런과 삼진이 함께 늘었다. 이후 삼진이 줄고 타율과 장타율이 상승했다. 기록을 보면 아주 이상적인 진화 과정을 거쳤다.
     
    터너가 외신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플라이볼 혁명에 대한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터너는 “땅볼을 때려서는 장타를 칠 수 없다. 장타를 원하면 일단 공을 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심지어 터너는 “한 경기에 네 번 타석에 들어서 모두 플라이아웃을 당했다면, 난 좋은 경기를 한 것이다. 왜냐면 땅볼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것도 맞는 말일까.
     
    여러 기사와 기록을 볼수록 플라이볼 혁명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 다음 편에도 이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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