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인터뷰] 57세 선동열, 나는 왜 야구소년으로 돌아갔는가

    [창간 인터뷰] 57세 선동열, 나는 왜 야구소년으로 돌아갔는가

    [일간스포츠] 입력 2020.09.25 06:00 수정 2020.09.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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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일간스포츠 창간 51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JTBC 골프매거진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일간스포츠 창간 51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JTBC 골프매거진

     
    세계적인 축구 감독 조제 무리뉴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축구만 아는 감독은 축구가 무엇인지 모르는 감독이다."
     
    이 말은 선동열(57) 전 야구대표팀 감독에게 충격과 영감을 동시에 줬다. 축구도, 야구도 사회의 축소판이며, 인생의 압축판이다. 또한 시대의 흐름과 함께한다. 그걸 모른 채 선동열 전 감독은 투구 폼을 봤고, 투구 수를 계산했고, 투수 교체 타이밍을 고민했다. 그는 오늘의 승리, 올해의 우승만 바라보고 살았다.
     
    선동열 전 감독은 "무리뉴 감독의 말을 나에게 대입했다. 과거의 난 야구만 생각했으니, 난 야구를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반성하고 있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교생 선동열이 노트에 썼던 야구 일기. 자전 에세이『야구는 선동열』에 공개된 내용이다. IS포토

    고교생 선동열이 노트에 썼던 야구 일기. 자전 에세이『야구는 선동열』에 공개된 내용이다. IS포토

     
    그는 학창 시절 야구일기를 참 열심히 썼다. 광주일고 2학년 때 쓴 '야구 십계명'은 지난해 그가 펴낸 『야구는 선동열』에 소개된 바 있다. 오밀조밀한 글씨로 일기를 썼던 그는 57세 나이에 '야구 소년' 시절로 되돌아갔다. 야구장 밖에서 야구를 보고, 경험하지 않았던 야구를 연구하며,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돌아보고 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지난 2018년 11월 국가대표 지휘봉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두문불출하다 지난해 7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2020시즌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 연수를 떠난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8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한 그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한국에서 단 하나뿐인 국가대표 감독 자리에서 내려올 때 착잡했던 표정과는 정반대였다. 대학교 새내기처럼 꿈에 부풀어 있었다.
     
    선동열 전 감독은 1985년 해태에 입단하기 전, MLB 구단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여러 번 받았다. 1981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와 이듬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미국 타자들을 압도하는 피칭을 보인 덕분이었다. 두 대회에서 모두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던 그는 MLB에 진출해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겨루는 꿈을 꿨다.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받은 병역 특례를 반납하고, 3년 동안 군 생활을 한 뒤 미국으로 떠날 계획까지 세웠다.
     
    그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사실상 미국 진출을 막았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났다. 지도자로서 MLB를 경험하려던 선동열 전 감독의 계획이 전 세계로 확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또 멈췄다.
     
    선동열 전 감독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기회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끔 골프도 치면서 잘 지내고 있다. 미국에 가지 못했지만, 온라인을 통해 MLB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초부터 일간스포츠에 '선동열 야구학'을 연재하고 있다. 이 칼럼은 광주 송정동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뒤 45년 동안 쌓아온 지식과 지혜를 나누는 내용이 아니다. 야구를 새로 배우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콘텐트다.
     
    일간스포츠 창간 51주년을 기념하는 인터뷰의 주인공은 선동열 전 감독이다. 올드보이 세대인 그가 왜 '야구 소년' 시절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뭘 배우려는지, 왜 배우려는지, 그걸 어떻게 쓰고 싶은지 듣고 싶었다.
     
    선동열 전 감독은 "미국에 가고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순리에 따라야지. 대신 코로나19로 인해 온택트(ontact) 시대가 열렸다. 방법을 찾다 보니 길이 보이더라"며 "지난 6개월 동안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와 기사를 보고 공부했다. 또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국가대표 감독에서 물러난 뒤 주위에서 여러 사람이 책을 선물했다고 한다. 야구 등 스포츠에 관련된 책도 있었지만, 인문학과 리더십을 다룬 책도 많았다. 선동열 전 감독은 "처음에는 그냥 읽었다. 읽다 보니까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요즘에는 책을 사서 읽기도 한다"며 웃었다.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야구 공부에도 탄력이 붙었다. 그는 지인들과 야구 스터디를 구성해 강의를 듣고, 토론도 했다. MLB 스카우트, 트레이너, 데이터 애널리스트와 지식을 나눴다.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재활의학과 전문의들로부터 의학 강의를 받기도 했다. 매일 전쟁을 치르는 현장에 있을 땐 만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야구를 오래 했고,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큰 착각이었다. 공부할수록 모르는 게 나온다. 내가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며 "내가 너무 내 분야(투수)에만 집중했다는 통렬한 반성을 하게 된다. 내 야구에만 집중했으니 야구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일간스포츠에 연재하고 있는 '선동열 야구학' 지면

    그가 일간스포츠에 연재하고 있는 '선동열 야구학' 지면

     
    일간스포츠에 연재 중인 '선동열 야구학'은 투수론으로 시작했다. '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9월 9일자)'와 '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9월 16일자)'가 그것이다.
     
    MLB에는 시속 100마일(161㎞)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수두룩하다. 마이너리그까지 합치면 1500명이 될 거라고 한다. 한국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일본에서도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여럿 등장했다. 그러나 한국 투수들의 스피드는 몇 년째 정체되고 있다. 선동열 전 감독은 그 이유를 데이터를 통해 분석했고, 속도를 더 낼 수 있는 투구 폼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풀어냈다. 또한 속도를 내는 것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선동열 야구학'은 '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9월 23일자)'로 이어졌다. 그의 연구가 타격으로 뻗어간 것이다. 선동열 전 감독은 "처음엔 '내가 무슨 타격에 관한 칼럼을 쓴단 말인가'하고 자문했다. 예전에 나라면 안 썼을 거다. 내가 감독을 맡을 때도 타격·수비·작전 등의 분야는 해당 코치에게 권한을 주고 일임했다. 그런데 난 지금 배우는 과정이다. 내가 들은 강의가 있고, 번역본으로 읽은 MLB 타격에 관한 자료도 있다. 이걸 야구인들,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반론이 있다면 토론 기회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칼럼은 다양한 주제를 향할 예정이다. 투수 분야에 국한됐던 과거의 선동열이 아닌, 새로운 이론과 시각으로 풍성해진 선동열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선동열 전 감독은 "야구를 공부하지만, 야구만 공부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무리뉴 감독의 말처럼 그래서는 진짜 야구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선동열 전 감독이 감독은 야구장 밖에서도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진은 재활 전문의로부터 강의를 받는 모습. 정시종 기자

    선동열 전 감독이 감독은 야구장 밖에서도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진은 재활 전문의로부터 강의를 받는 모습. 정시종 기자

     
    평생 동안 '현장 야구'에 매몰됐던 그는 끊임없이 시점을 달리하는 중이다. 한국·일본이 아닌 MLB 시작으로 KBO리그를 보고 있다. 전문의, 그리고 트레이너의 지식을 빌려 부상과 싸우는 선수를 도우려고 노력 중이다. 직관이나 경험이 아닌 세이버메트릭스(야구를 통계학·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로 야구를 해석하는 법도 배우고 있다.
     
    선동열 전 감독의 연구 주제는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야구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야구는 그래서 인문학이자 경영학이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 서툴러서, 세상이 변하는 것에 둔감해서 그가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동열 전 감독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물어야 했다. 2018년 10월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됐을 때의 일이다. 그해 8월, 그는 야구대표팀을 이끌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해태의 선발 투수로, 일본 주니치의 마무리 투수로, 삼성 감독으로 맛본 많은 우승과 달리, 그 우승은 그에게 쓰디썼다.
     
     
    한국 대표팀은 대만과의 예선 1차전에서 1-2로 졌다. 결승전에서 일본을 3-0으로 이기고 우승한 뒤에도 비난이 쏟아졌다. 경기력이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몇몇 선수에 대해 병역 특혜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구 대표팀의 우승은 정치 이슈로 비화했다. 한 사단법인이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정치인들은 선동열 전 감독을 국정감사장 증인으로 세웠다.
     
    당시 여론은 대표팀의 우승을 깎아내렸다. 기사 댓글에는 팬들의 분노가 넘쳐났다. 선동열 전 감독이 청탁을 받았거나, 부정을 저질렀다는 여론 몰이가 있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난 팬들의 비난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공정의 가치가 중요하고, 병역 문제에 민감하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정도일 줄은…"이라고 말을 흐렸다.
     
    선동열 전 감독은 국정감사장에서 "어떤 청탁이나 불법행위가 없었다"며 정치인의 공세를 막아냈다. 애초 의혹 제기에 근거가 없어서,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질문 수준이 낮았다. 국정감사에서 오히려 여론이 뒤바뀌었다. 이후 관련한 모든 신고가 종결 처분이 내려졌다.
     
    결과적으로 선동열 전 감독은 정치권 이슈 몰이의 희생양이었다. 그는 국회에서 온갖 공세를 홀로 견뎌낸 뒤 화염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발걸음은 2020 도쿄올림픽으로 향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선동열 감독은 그해 11월 국가대표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그는 "우리 선수들이 참 열심히 뛰었다. 국정감사장에서 '아시안게임 우승이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결심했다. 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그나마 야구인들의 명예가 지켜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동열 감독은 상황이 불리할 때 떠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 명분이 있을 때 내려놓았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기량이 비슷하다면 가급적 병역 미필자를 선발하는 관행에 따른 걸 후회했다. 그걸 보고 평범한 청년들이 느꼈을 박탈감도 헤아리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사퇴 기자회견문에 담았다. 선동열 전 감독은 "야구계의 관행에 따라, 야구 선후배들과 상의했다. 감독은 결과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정감사가 끝난 뒤 아들 민우가 "아빠, 저 특전사 나온 건 잘한 거죠?"라고 물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장 예민한 병역 문제가 불거졌으니, 선동열 감독의 가족들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워서 그저 웃었단다.
     
    아들 민우는 서른 살이 됐고, 딸 민정은 지난해 결혼했다. 선동열 감독이 삼성 감독을 처음 맡았을 때 그의 나이 42세였다. 그때 선수들은 그에게 동생이자 후배였다. 감독에게 선수들은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대상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시대가 변했다.
     
    그는 "어느덧 프로야구 선수들이 내 아들딸 같은 나이가 됐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운 만큼, 지금 선수들은 그렇게 성장했다. 믿어주고 안아주면 자기 일을 잘해내더라. 요즘 20~30대 선수들은 매일 MLB를 보고, 수많은 데이터를 접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우리 세대와 다르다. 지금 부모가 아이들에게 그렇듯이, 지도자는 선수를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말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왼쪽)으로부터 '젊은 세대의 트렌드'라는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정시종 기자

    선동열 전 감독은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왼쪽)으로부터 '젊은 세대의 트렌드'라는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정시종 기자

     
    그는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을 만나 젊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스마트하고 윤리적이다. 개성이 강하고, 자존감도 높다"며 "그러나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가 가졌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아시안게임 때 여론이 들끓었던 이유를 선동열 전 감독은 시간이 더 지나 알게 됐다.
     
    선동열 전 감독은 "요즘 민우가 저한테 여자 친구와 데이트 하는 얘기를 한다. 난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걸 상상도 못했다. 세상이 달라졌고, 나와 가족들도 변했다"며 "요즘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 덕분 같기도 하다. 아들딸을 어리게만 봤지만, 얘기해 보면 그렇지 않더라"며 웃었다.
     
    야구장 밖에서 야구를 보니 궁금한 게 더 많다고 한다. 선수와 지도자로 경험한 수많은 성취와 실패가 2020년 선동열에게 묻고, 또 묻고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씩 찾기 위해 그는 여행하는 중이다.
     
     
    "현장을 떠나 있다고 해서 제가 야구인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한국야구를 위해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을지 모르지만, 공부는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할수록 제가 모르는 게 나와요. 그러니 공부를 안 할 수 없죠.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허허."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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