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본관. 연합뉴스
'KBS 몰카범 허위자백' 밝힌 피해자들
하지만 수사 단계에서 박씨가 일부 허위자백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피해자 측 A 변호사는 “박씨가 본인의 범행 수법과 기간을 모두 자수한다며 거짓말을 했다”며 “올해 1월부터 본인이 출연자 대기실에 초소형 카메라를 몰래 설치했다고 진술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A 변호사는 “당시 박씨의 범행 기간을 듣고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부터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직접 영상을 확인하고자 검찰청을 찾았다”고 말했다. A 변호사는 검찰에서 영상 복사를 허용하지 않자 담당 수사관 컴퓨터로 박씨가 촬영한 영상을 확인했다. 그중 피해자들이 찍힌 장면 일부는 직접 캡처해 피해자에게 보여줬다.
캡처 사진을 전달받은 피해자들은 깜짝 놀랐다. 범행 당시 찍힌 사진에서 본인이 입고 있던 옷이 올 초 입었던 옷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해당 옷을 입은 날짜를 찾으려고 휴대전화에 저장한 셀카 사진 등을 일일이 확인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박씨가 불법 촬영한 영상 속 자신이 입었던 옷이 지난해 10월 23일에 입은 옷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A 변호사는 “기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러한 증거 자료를 정리해 검찰에 제출했다”며 “결국 검찰이 공소장에서 박씨의 대기실 불법 촬영 범행 시작일을 2020년 1월에서 2019년 10월로 수정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덕분에 박씨의 범죄 기간을 바로잡은 셈이다.
A 변호사는 “자백을 한다는 의미는 반성한다는 것 아니냐”며 “말로는 자백한다면서 형량을 줄이기 위해 고의로 허위자백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자신이 당시 입던 옷과 기록을 확인하면서 다시 박씨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박씨 측 변호인은 이런 지적에 대해 “언론과 일체 인터뷰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디지털 성폭력 증거물 접근 제한적”
디지털성폭력 범죄 수사 과정의 문제점이 단적으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몰래카메라 범죄 등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 수사에서 증거물에 대한 피해자 접근이 극히 제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수사당국이 압수수색 등으로 확보한 불법 촬영물의 원본 영상을 피해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는 탓에 피해자들은 본인이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 알 길이 없다”며 “온라인상에 유포한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서는 불법 촬영된 원본 영상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마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11일 박씨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박씨의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6일에 열린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