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토크①] 강말금 ”월급 150만원 받던 직장인, 서른에 시작한 연기로 여기까지”

    [취중토크①] 강말금 ”월급 150만원 받던 직장인, 서른에 시작한 연기로 여기까지”

    [일간스포츠] 입력 2020.10.23 10:00 수정 2020.10.2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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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신인이다. 서른 살에 연기에 입문해 한국 나이로 마흔 셋이 되는 해에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이름처럼 맑은 앞날이 펼쳐진 배우 강말금(41)이다.
     
    지난 6월 열린 제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김초희 감독)'로 영화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뭉근하게 졸여낸 딸기잼처럼, 은근하게 웃음을 선사하는 이 영화에서 능청스러운 연기로 주인공 찬실이를 표현했다. 실제로 찬실이라는 인물이 어딘가 살아 숨 쉬고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줄 만큼, 리얼한 생활 연기를 펼쳐 극찬받았다. 판타지적 요소 또한 가진 작품이지만, 현실에 발붙여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강말금의 생활 연기가 큰 공을 세웠다.
     
    대체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서야 나타난 신인일까. 그 사연을 듣자면 영화 한 편, '인간극장' 뚝딱이다. 부산 출신으로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시절 연극 동아리 회장을 맡았으며, 대학교 졸업 후에도 선뜻 배우가 되려는 결심이 서지 못해 매일 방황했다. 그러다 서른 살에 극단에 들어가 별별 일을 다 해봤고, 마흔 살에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의 단편 영화를 찍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난 이가 찬실이다. 버텨내는 낮과 고민하는 밤을 10여년 보내고 나니 배우로 불릴 수 있게 됐다.
     
    강말금과 백상 이후 넉 달 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자서전 하나 나올 만큼의 서사를 가진 그이지만 알고 보면 그냥 옆집 언니다. "소주는 마치 헤어진 애인 같다"며 소주잔 비우기를 멈추지 않았고, "다이어트 해야 한다"면서 요즘 즐겨 하는 '홈트'를 소개했다. 얼마 전에 배우 배두나를 만나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며 자랑했고, 동네 뒷산 산책의 즐거움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마무리로는 연애 상담까지. 배우이자 옆집 언니 강말금과의 취중 수다는 밤까지 끝나지 않았다.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이 얼마나 되나요.  
    "소주 한 병입니다. 더 먹으면 탈이 나요. 안주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해요. 소주는 감자탕이나 곱창전골과는 많이 마실 수 있어요. 그렇게 먹으면 두 병 넘게 마셔도 다음날 탈이 잘 안 나요. 사실 소주는 어떤 안주랑 먹어도 잘 어울리긴 하지만요.(웃음) 제가 어느 해부터 장염에 매년 걸리더라고요. 이상하게 소주와 함께 장염이 와요. 그래서 소주는 질척거리는 헤어진 애인 같달까요. 정말 좋아하는데 탈이 나니까 계속 질척거리기만 하게 되네요."  
     
    -연극 하던 배우들은 또 술과 떼려야 뗄 수 없죠.  
    "항상 연극 연습 끝나고 나면 술이 먹고 싶더라고요. 30대 때에요. 영원히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하하. 지금은 조심하면서 마시려고 하죠. 황석정 언니, 이정은 언니와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엄청 자주 술 마신 기억이 나네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 그 술값을 냈겠죠? 거기서 저는 배우가 아니라 조연출이었는데, '저 친구가 마음고생을 했겠구나'란 생각을 했나 봐요. 언니들이 술도 많이 사주시고, 많은 사랑을 줬어요."
     
     
     
    -영화에서 찬실이를 보다가, 시상식장에서 만난 여배우의 아름다움에 깜짝 놀랐네요.
    "저도 놀랐어요.(웃음) 오랜만에 숍에 가서 단장을 좀 했어요.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가 골라줬고, 여러 개 중에 제가 최종 선택했어요. 그런 큰 자리는 처음이었어요. 조심스러웠죠. 저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성격이에요. 젊었을 때 그런 자리에 갈 수 있었으면 설레고 신났을 텐데, 지금은 '소소한 게 좋다'는 대사처럼 집에 있거나 친구랑 맛있는 거 먹는 게 좋아요. 지금은 '대외적인 자리에 가면 까불지 말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찬실이와 달리 차분한 성격인 것 같아요.
    "원래 차분한 사람을 감독님이 찬실이로 만든 거예요. '제가 이런 성격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정도예요. 감독님은 해이고 저는 달이에요."
     
     
     
    -연기를 뒤늦게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학 2학년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어요. 저는 부산대 국문과를 나왔는데, 잘 사는 집안의 딸도 아니었고 아버지도 아프셨어요. 당시엔 제가 배우를 한다고 하면 모든 사람이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정확한 캐릭터가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배우를 하겠다는 말을 저 자신에게도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대학교 4학년이 됐을 때, 극회 회장을 하고 있어서 그 맥락으로 부산에서 연극을 하는 분들을 알게 됐어요. 문화 기획을 하시는 분이 같이 일하자고 한 적도 있고요. 쉽게 도전하지는 못했죠. 한 달 수입이 일정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집에서는 월급을 받는 일 이외의 직업은 상상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언니가 혼자 돈을 벌었어요. 제가 연습을 하러 가던 길에 엄마가 '못 간다'고 해서 결국 연습을 못 가고 기회가 끊어졌어요. 이후에 그냥 취준생으로 살다가 150만원 월급을 준다고 해서 무역 회사에 입사했죠. 퇴근 시간만 기다렸어요. 150만원을 시급으로 계산했더니 당시 아르바이트 시급보다 많은 거예요. 그렇게 버텼어요. 괴로움 속에서 밤마다 술을 먹었어요.(웃음) 입사 후 6개월 후에 회사를 그만두려고 생각하니 '한 달에 적금을 얼마 넣고, 얼마를 지출하는지'가 이미 다 정해져 있더라고요. 엄마가 정말 행복해하면서 아침마다 갈비 구워주는 얼굴도 기억이 났고요. 그 회사가 1년 반 후에 문을 닫았고, 그다음 회사에 가서 또 1년 반을 다녔어요. 그때도 매일 술 마시고, 당시 남자친구가 '도저히 안 되겠다'면서 헤어지자고 한 적도 있어요. 하하하. 눈물 병이 굉장히 커졌어요. 회사 갈 때마다 눈물이 나면 한 바퀴 휙 돌면서 눈물 닦고. 먹는 걸 좋아하는데 밥도 안 먹었어요. 같이 일하던 소장님에게 '내가 이 상태론 그만둬야 하는데, 그만둘 힘이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소장님이 절 이해해주시고, 다음날 '서울에 자리가 하나 났는데 가라'고 해주셨어요. 그렇게 서울에 와서 1년 반 넘게 일하다가 서른살 되던 해 2월에 그만두고, 극단에 메일을 보내서 들어가게 됐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근데 들어가서 알았죠. 이제 시작이라는 걸.(웃음)" 
     
     
    -극단 생활은 어땠나요.
    "극단에서 저는 숙소 생활을 했어요. 복지가 좋은, 이상적인 극단이었어요. 제가 극단 무대에서 본 배우는 3명 정도에요. 근데 그 숙소엔 13명이 있었어요. 계속 연습생처럼 있던 사람들이죠. 그래서 놀랐어요. 연기 수업을 많이 하는 극단이었는데, 서울말 억양 하나 정도 연습해서 연기하던 사람인데, 진짜 여러 서울말을 연습했어요. 얼마나 어색했겠어요. 선생님이 대사를 하나 주고 사람들 앞에서 읽어보라는 거예요. '이런 게 극회 출신의 비극이다'라는 평을 들었어요. 그 이후로 또 1년 동안 입을 잘 떼지 않고 술로 세월을 보냈죠. 하하하. 거기서 2년 반 동안 있었어요. 대사 있는 역할은 한 번도 못했어요. 좋은 연극을 많이 하던 곳인데, 극단 사정이 점점 안 좋아졌어요. 대학로에 가면 끊임없이 새로운 연극을 하는데, 그게 참 힘들어요. 저희 극단은 좋은 고전 같은 연극을 하나 만들어서 계속 변형을 하고자 하는, 이상이 있는 곳이었어요. 제가 있을 때 배우 두 명을 유학 보내주기도 했어요. 근데, 지원금이 잘 안 들어온 거예요.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배우들도 아르바이트를 나갔어요. 저는 '스펀지'라는 예능프로그램에 재연 코너를 나가게 된 거예요. 가서 한 번 찍었는데, 두 번째는 주연으로 부르더라고요. 극단에서 변변한 역을 못하다가 TV에 나갔더니 좋은 거죠. '이게 가능하다.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았는데 이걸 할 줄 아네'라고 생각했어요. 필름메이커스라는 사이트에서 지원을 해서 그 해만 단편 영화 10편을 찍었어요."

    >>[취중토크②] 에서 계속 

    조연경·박정선 기자  
    사진=박세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