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석의 리플레이] 1990년 처음 야구 만난 소년, 2020년 기록의 사나이 되다

    [이형석의 리플레이] 1990년 처음 야구 만난 소년, 2020년 기록의 사나이 되다

    [일간스포츠] 입력 2020.1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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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박용택이 지난 10월 28일 홈 최종전을 마치고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LG 박용택이 지난 10월 28일 홈 최종전을 마치고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1990년 6월 3일. 날짜와 요일까지 또렷하게 기억했다. 공부든 달리기든 늘 1등만 했던 소년이 야구를 시작한 날이다. 이날부터 30년 넘게 '야구 선수'라는 외길로 뛰었다.
     
    정든 유니폼은 벗은 LG 박용택(41)의 이야기다. 그는 "그해 6월 2일 밤부터 '좋은 야구 선수가 되자'라는 목표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30년 동안 뛰었다"라고 야구 인생을 돌아봤다. 
     
    박용택은 당시 학급 반장이었다. 성적도 우수했다. 그때부터 체격이 좋아서, 학교 체육부의 스카우트 1순위 대상이었다. 마침 그가 다녔던 고명초등학교는 1989년 11월 야구부를 창단했다. 박용택은 "당시 야구보다 축구를 더 좋아했다"고 떠올렸다.
     
    1990년 6월 2일, 박용택은 친구들과 동네에서 야구를 했다. 마침 최재호 야구부 감독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2020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강릉고를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끈 최 감독은 일찍부터 박용택의 성공 가능성을 엿봤다. 고명초 야구부는 창단 후부터 6개월 넘게 박용택을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해왔다. 이 과정에서 최 감독은 박용택과 같은 반 친구였던 이재우(전 두산 투수)를 시켜 "(박)용택이도 야구부에 데려오라"고 권유했다.
     
     
    박용택이 야구부 연습을 지켜보자 최 감독이 다가와 "너, 쟤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아?"라고 물었다. 박용택은 당연하다는 듯 "제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이 한 마디에 최 감독은 박용택의 집으로 향했다.
     
    농구 선수(대경고-경희대-한일은행) 출신인 아버지 박원근씨는 최 감독과 아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누구보다 아들의 운동 신경이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운동선수(남편)의 삶을 본 어머니는 공부 잘하는 아들이 야구를 하는 걸 반대했다. 결국 부자(父子)의 고집에 어머니도 마음을 돌렸다. 박용택은 "지금 떠올려보면 야구를 시작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최재호 감독님과의 만남은 운명"이라고 떠올렸다. 박용택은 다음날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물론 '보험'도 들었다. 휘문중-휘문고-고려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중학교 진학 당시에도 러브콜을 많이 받았다. 당시 또 다른 명문중에서도 박용택의 영입을 시도했으나, 운동선수 출신인 박원근 씨는 "앞으로 네 진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휘문중은 학군이 좋은 데다, 농구로 종목을 변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휘문중을 선택했다. 실제로 휘문중 농구부 코치는 "넌 농구인인데 왜 야구를 하고 있냐"라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한 마디를 늘 가슴에 품고 유니폼을 입었다. 박용택은 "아버지께서 '정말 야구를 하고 싶으면 시작해도 좋다. 다만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장난이 아니다. 중-고-대학교까지 앞으로 네 직업으로 삼고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 다짐이 있으면 시작하라'고 일러주셨다. 정말 소중한 조언이었다"라고 30년 전 기억을 되짚었다.
     
     
    그는 대학 졸업 때까지 아파서 운동을 쉰 적이 없다. 감기몸살로 체온이 40도까지 오른 날에도, 훈련했다. 은퇴를 앞둔 올 시즌 대타 요원으로 나서면서, 경기 중반부터 배트를 돌리며 한 타석을 소중하게 여긴 것도 이런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고려대 후배이자 올 시즌 함께 은퇴한 정근우(38·LG)는 "고려대 시절 (박)용택이 형의 훈련 열정은 대단했다. '저 정도면 그만해도 될 텐데' 싶었지만, 배트만 잡으면 눈빛이 변했다"라고 떠올렸다. 정근우도 악바리로 유명했지만, 박용택의 성실함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열정은 기록으로 남았다. 박용택은 KBO리그 역대 개인 최다 안타(2504개), 최다 경기 출장(2236경기), 역대 최초 8년 연속 150안타를 달성한 대기록의 주인공이다. 개인 통산 타율은 0.308다.
     
    '좋은 야구 선수가 되자'라는 목표 의식은 모범적인 선수 생활의 밑거름이었다. 수상 가능성이 작음에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낸 것도 팬 서비스의 일환이었다. 그는 "서울팀, 인기 팀에 몸담아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절제했다"고 말했다.
     
     
    그가 프로 무대에서 얻지 못한 단 하나는 '우승의 기쁨'이다. 신인 시절이던 2002년 한국시리즈에 오른 뒤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 올 시즌 절호의 찬스였다.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LG는 정규시즌 최종일 4위로 떨어졌고, 결국 플레이오프(PO) 진출에 실패했다. 그의 현역 생활도 마감했다. 박용택은 "거기까지인 거죠"라고 했다. 이어 "야구에 입문한 뒤 고려대 시절까지 우승을 많이 했다. 좌절과 실패를 맛본 적이 별로 없다. LG 입단 첫해에도 마찬가지였다"라며 "우승하지 못했다고 아쉽지 않다. 야구는 늘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 종목이다. 상대 투수의 공 하나하나에 많은 것이 바뀐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충분히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그의 은퇴식은 내년에 성대하게 열릴 예정이다. LG는 지난 5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의 PO 2차전에서 7-9로 졌고, 이는 그의 마지막 경기였다. 경기 종료 후 일부 팬들이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것을 들었지만, 반대편에 있던 '승자' 두산이 PO 진출을 기념해 기뻐하는 것을 보고 LG 팬들에게 작게나마 인사를 드리려던 마음을 접었다.
     
     
    대신 그는 이 말로 야구선수로서의 행복을 표현했다.
     
    "올 시즌 로베르토 라모스가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어느 팀 팬이었나?'라고 물었다. 선수마다 삼성, 두산, 한화 등 여러 팀 명을 언급했다. 나는 당당하게 '어릴 적부터 LG 팬이었다'라고 했다. 1990년 야구를 시작하면서 내 머리와 가슴 속엔 프로야구팀은 LG, 한 팀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찐사랑'을 받았다. 많은 스타 플레이어가 있지만, 나만큼 사랑을 받은 선수는 없었던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 LG 트윈스에서 팀 성적이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항상 사랑하고 응원해주신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