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희 감독의 읍소…피하지 말고 이겨내야 한다

    박미희 감독의 읍소…피하지 말고 이겨내야 한다

    [일간스포츠] 입력 2021.02.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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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국생명 선수단이 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전에서 세트스코어 0-3으로 완패한 뒤 코트를 빠져나오고 있다. 인천=정시종 기자

    흥국생명 선수단이 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전에서 세트스코어 0-3으로 완패한 뒤 코트를 빠져나오고 있다. 인천=정시종 기자

     
    흥국생명 선수단은 16일 경기 패배 후 미리 약속한 듯 썰물처럼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선수단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평소 선수들은 경기 종료 후 승패와 관계없이 10~15분 코트에서 스트레칭 등으로 마무리 훈련을 한 뒤 경기장을 떠난다.   
     
    박미희(58) 흥국생명 감독은 16일 홈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20-21 도드람 V리그 IBK기업은행전이 끝나고 취재진에게 부탁했다. 그는 "최악의 상황이다. 경기력이 나아지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며 "과도한 관심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남은 선수들이 더는 다른 요인으로 방해받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교체 외국인 선수 브루나의 부진에 관한 질문에도 박미희 감독은 마지막에 "비상식적인 이야기까지 들린다. 잘못한 사람은 처벌받아야 하지만 남은 선수들은 배구에 집중해야 하지 않나"라며 "외부에서도 우리 팀이 흔들리지 않게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간절함이 담긴 읍소였다. 최근 연이어 터진 논란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은 데다 팀 성적도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은 벌써 4연패에 빠졌다. 봄 배구 진출은 확정적이나, 현재와 같은 모습이라면 정규리그 우승을 장담할 수 없다.
     
    최근 3경기 연속 0-3 셧아웃 패배를 당할 만큼 경기력이 나쁘다. 16일 경기는 이번 시즌 양 팀 최다 점수 차(IBK기업은행 75점, 흥국생명 41점) 패배, 11일 한국도로공사와 경기에선 최소 시간 패배(1시간 8분) 등 불명예 기록만 쌓고 있다. 1위 팀 기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성적표. 두 경기 모두 이재영-이다영이 '학폭' 사태로 빠졌다.
     
     
    4대 프로 스포츠 여성 지도자 중 최초로 통합 우승을 이루며 '엄마 리더십'을 인정받은 박미희 감독은 선수를 아끼는 지도자다. 부진한 선수를 질책하기보다 "앞으로 더 잘할 것이다. 지켜봐 달라"고 해왔다. 이다영에게 비난의 화살이 향할 때도 박미희 감독은 취재진에 "우리 다영이 예쁘게 봐주세요"라며 말했다.
     
    박미희 감독의 말처럼 억측에 가까운, 또 가십성 기사가 생산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학교 폭력은 스포츠를 넘어 사회적인 이슈로 파급력이 커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높다. 불화설과 학교 폭력은 따로 떼고 봐야 하나, 결국 팀 내 갈등이 이번 논란을 가져온 도화선이었다. 그렇다면 구단과 코치진도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이재영은 지난 몇 년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을 이끌어온 에이스였다.
     
    결국 흥국생명 구단과 선수단이 지금의 비난과 관심을 이겨내야 한다.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럽더라도 경기 뒤 스트레칭 등 기본적인 것들을 평소처럼 해야 한다. 루틴을 바꾸면서까지 도망치듯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건 프로의 자세가 아니다. 흥국생명 구단은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뒤 가끔 스트레칭을 건너뛰는 경우도 있다"라고 하나, 이런 모습은 득이 될 게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유지하고 노력하는 것이 프로의 임무다.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남은 선수들, 특히 어린 선수를 주눅 들게 할 수 있다. 여전히 흥국생명의 남은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들은 어려운 상황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이 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흥국생명이 세트스코어 0-3으로 완패했다. 경기 종료후 김연경이 코트를 빠져 나가고 있다. 인천=정시종 기자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이 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흥국생명이 세트스코어 0-3으로 완패했다. 경기 종료후 김연경이 코트를 빠져 나가고 있다. 인천=정시종 기자

     
    박미희 감독의 읍소처럼 팀에 남아 있는 선수들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나친 관심에 부담 느끼지 않도록 구단과 코치진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분위기를 탈바꿈하는 데 최고의 방법은 승리다. 이를 이뤄낼 주체도 결국 선수들이다. 결국, 선수들이 힘을 모아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다소 잔인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렇다. 그게 잘못이 없는 선수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인천=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