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상열은 도대체 어떻게 KB손보 감독이 됐나

    [기자의 눈]이상열은 도대체 어떻게 KB손보 감독이 됐나

    [일간스포츠] 입력 2021.02.23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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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 IS포토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 IS포토

     
    배구 팬은 12년 전 박철우(36·한국전력)를 구타한 이상열(56) KB손해보험 감독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얼굴과 복부에 피멍이 생길 만큼 심한 폭력을 가한 지도자가 어떻게 프로팀 사령탑으로 선임될 수 있었는지 의구심도 가졌다. 바로 이 점이 남자배구로 번진 폭력 파문의 핵심이다.
     
    지난 2009년 박철우는 아시아배구선수권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9월 17일 당시 대표팀 코치였던 이상열 감독은 태도가 불량하고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박철우를 때렸다. 이튿날 박철우는 기자회견을 열어 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렸다. 병원에서 받아 온 진단서(전치 3주)도 공개했다. 
     
    일파만파. 대한배구협회(배구협회)는 9월 19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이상열 감독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해 2월 부임한 박용성 당시 대한체육회 회장은 "일벌백계로 스포츠계의 폭력을 뿌리 뽑겠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태릉선수촌장 명의로 이상열 감독을 노원경찰서에 형사 고발하는 조처를 하기도 했다. 대한체육회가 폭행 사건에 연루된 코치를 직접 고발 조치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난 2009년 기자회견을 열고 폭행 사실을 알렸던 박철우

    지난 2009년 기자회견을 열고 폭행 사실을 알렸던 박철우

     
    그러나 이상열 감독은 2년 뒤인 2011년 8월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위원 선임됐다. 당시 이상열 감독에 대한 배구협회의 징계는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KOVO는 "배구협회의 징계는 지도자 자격 박탈이었다. 대한체육회와 문체부에 자문한 결과 '(경기위원은)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받아 (2001년 7월 19일 열린) 이사회에서 선임을 결정했다. '선수와 코치 시절 국위를 선양한 이상열 감독에게 재기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배구인들의 요청을 반영했다"고 했다.
     
    배구협회의 '무기한 자격 정지' 징계는 2011년 12월 해제됐다. 실제 징계 기간은 2년 3개월뿐이었다. 어영부영 '지도자 자격'까지 복원됐다. 배구 팬은 이듬해 3월 경기대 감독이 되어 현장을 찾은 이상열 감독을 보고 그의 복귀를 알게 됐다. 당시 배구협회와 연맹뿐 아니라 그를 선임한 학교를 향해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이상열 감독은 이후 SBS 스포츠 해설위원도 겸임했다. 2015년 10월에는 2016 아시아 청소년 남녀 선수권대회 사령탑으로도 선임됐다. 그는 폭행 사건 전보다 더 활발하게 배구계를 누볐다. 그걸 배구인들이 합심해 도왔다.
     
    배구인들의 온정주의가 초래한 결과다. 배구계 관계자 중에서는 이상열 감독에게 내려진 징계(무기한 자격 정지)가 과했다고 보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재기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 얘기다. 징계 해제 뒤 그의 '재취업'은 일사천리였다. 
     
    2019년 유니버시아드 남자배구 대표팀에 이상열 감독이 내정되자,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KUSB)는 폭력으로 징계를 받은 그의 전력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협회에는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이들이 더 많았다.
     
    사진=KB손해보험 제공

    사진=KB손해보험 제공

     
    급기야 KB손해보험은 2020년 4월 권순찬 전 감독의 후임으로 이상열 감독을 영입했다. KOVO가 이상열 감독의 복귀문을 열어줬고, 배구협회가 국가대표팀 지도자로 선임까지 했으니 그의 폭력 전력이 희석됐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해서 폭행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코트에 서게 됐다. 대학팀, 청소년 대표팀과 달리 KB손해보험은 V리그에 소속된 팀이다. KB손해보험 한 시즌에 최소 6번은 박철우의 소속팀을 상대한다.
     
    KB손해보험은 스스로 폭탄을 끌어안았다. 이상열이라는 리스크를 감수했다. 이재영-다영(흥국생명) 쌍둥이의 학폭(학교 폭력) 파문이 커진 지난주, 이상열 감독은 "남이 모른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는 게 아니다. 어떤 일이든 대가가 있을 것이다. 인과응보가 있더라"고 말했다. 12년 전 폭행 가해자로서 조심스럽게 한 말이 피해자인 박철우를 되레 자극했다.
     
    박철우는 SNS에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라는 글을 올린 뒤 지난 18일 인터뷰를 자청했다. 그는 "그분(이상열 감독)이 KB손해보험 감독으로 선임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너무 힘들었다. 경기장에서 지나가다 마주칠 때마다 정말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상열 감독이) 대학 지도자 시절에도 선수에게 '박철우 때문에(징계 전력 때문에) 넌 안 맞는 줄 알아'라는 말을 한 것으로 들었다"며 전했다.
     
    폭탄이 터졌다. 배구 팬의 분노가 폭발하자 이상열 감독은 잔여 경기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그걸로 끝날 일은 아니다. 12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폭행 사건의 가해자가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피해자와 같은 코트에 서게 됐는지 팬들은 알아야 한다.
     
    "(이상열 감독 선임 과정에서) 폭력 전력이 문제가 될 거라 예상하지 않았느냐"는 일간스포츠의 질문에 KB손해보험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상열 감독의 경질이 논의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KB손해보험은 "고통받은 박철우 선수가 치유되고, 감독님께서 용서는 받는 게 우선인 것 같다"고 답했다.
     
    이상열 감독이 여기까지 오는 데 여러 배구인이 도움을 줬다. 결정적으로 그를 감독으로 선임한 KB손해보험이 가장 큰 오판을 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난 며칠간 본 대로다. 이상열 감독 말대로, 그건 인과응보였다.
    안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