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엔드게임] 컨베이어가 아닌 장인(匠人)을 꿈꾸는 오타니

    [김식의 엔드게임] 컨베이어가 아닌 장인(匠人)을 꿈꾸는 오타니

    [일간스포츠] 입력 2021.04.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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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 연합뉴스 제공

    LA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 연합뉴스 제공

     
    지난 5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에인절스타디움. LA 에인절스가 3-0으로 앞선 4회 말 2사 1·3루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발 투수 딜런 시즈가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던졌다. 무릎으로 향해 날아드는 공에 2번타자 오타니 쇼헤이(27)는 풀썩 주저앉았다. 위협구 같은 공을 던진 뒤 시즈는 바깥쪽 패스트볼로 오타니를 1루 땅볼로 잡아냈다.
     
    오타니는 호흡을 가다듬고 더그아웃이 아닌 마운드로 향했다. 4회 초까지 압도적인 피칭을 보였던 오타니는 5회 초 흔들렸다. 수비 실책이 겹치면서 3실점(1자책)했다. 이 과정에서 홈을 커버했던 오타니가 3루 주자와 충돌해 쓰러졌다. 오타니는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놓고 2018년 5월 21일 이후 1050일 만의 메이저리그(MLB) 승리투수가 될 기회를 놓쳤다.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오타니는 또 보여줬다. 타자로서 쓰러지고 얼마 되지 않아 투수로 또 나뒹굴었다. 부상이 있었고, 체력 소모도 컸다. 무엇보다 투수와 타자로 전혀 다른 동작을 하면서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밸런스'가 흔들렸다.
     
    5일 1회 역투하는 오타니. 연합뉴스 제공

    5일 1회 역투하는 오타니. 연합뉴스 제공

     
    일본 프로야구를 거쳐 2018년 에인절스에 입단한 오타니가 MLB 정규시즌에서 투수와 타자로 동시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에는 투수로 등판하는 날에는 타석에 서지 않았다. 2번타자가 다른 포지션이 아닌 투수로만 한 경기를 뛴 건 MLB 역사상 세 번째, 1903년 잭 던리비(세인트루이스) 이후 118년 만이다. 2018년 오타니가 투·타에서 기록을 세울 때마다 소환되는 선수가 베이브 루스(1895~1948)다. 오타니는 역사와 싸우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투·타 겸업 선수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위험하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과 일본의 여러 전문가가 오타니의 겸업을 비판한 이유다.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고, 누구보다 예민하기 마련인 투수는 오래전부터 타격을 사실상 포기했다. 그로 인해 MLB 아메리칸리그는 1973년 지명타자제를 도입했다.
     
    선수가 수비와 공격을 다 하는 게 스포츠의 기본이다. 야구도 그랬다. MLB 내셔널리그와 일본 센트럴리그는 여전히 투수가 타석에 선다. 하나 대부분 쉬어가는 타순으로 여겨진다. 코치진은 선발 투수가 배트를 잡으면 "다치지 말고 삼진 먹고 오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분업 시스템을 만들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스포츠의 분업화는 야구가 주도했다. 투수와 타자를 분리했고, 마운드 운영을 세분화했다. 한 사람이 던지고, 때리고, 뛰는 건 만화 스토리다. 현실에서는 그런 고교 선수도 거의 없다.
     
    5일 첫 타석에서 137m 대형 홈런 터뜨린 오타니. 연합뉴스 제공

    5일 첫 타석에서 137m 대형 홈런 터뜨린 오타니. 연합뉴스 제공

     
    오타니는 고도화한 분업 시스템을 거부했다. 5일 경기에서 그는 올 시즌 MLB 선발 투수 중 가장 빠른 공(시속 163㎞)을 던졌다. 1회 말 타석에서는 시즈의 156㎞ 강속구를 받아쳐 올 시즌 가장 빠른 타구(185㎞)를 만들었다. 키 193㎝인 그는 최근 벌크업에 성공해 100㎏ 정도의 체중을 만들었다. 그래도 주루가 매우 빠르다.
     
    세계 최고의 재능이 모인 MLB에서도 오타니의 슈퍼탤런트는 단연 돋보인다. 현재의 오타니는 단지 힘과 기술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고교 시절 그는 스무 살 MLB에 진출해 마흔 살 노히트노런을 하고 은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한 실행 과제인 만다라트 계획표는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행운을 얻기 위해 쓰레기 줍기 등의 선행까지 계획한 걸 보면 웃음이 난다.
     
    오타니는 플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MLB에 직행하지 않고 일본 니혼햄을 경유했고, 계획표에 없는 투·타 겸업이 주요 과제가 됐다. 그러나 절대 흔들리지 않는 건 야구 영웅이 되겠다는 그의 일념이다. 연봉을 낮추고, 비아냥을 듣고, 비효율을 감수하며 그가 추구한 건 야구 그 자체다. 거기에는 장인(匠人) 정신이 깃들어있다.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하지 않는 건 내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는 오타니는 어느덧 만 27세가 됐다. 야구 선수로 부와 명예를 거머쥘 나이다. 투수와 타자, 하나만 선택한다면 빠른 길이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야구 소년은 풀숲을 헤치며 걷고 있다.
     
    오타니가 MLB 역사에 어떻게 남을지 모르겠다. 통산 홈런이나 탈삼진 순위권에 들긴 어렵다. 그러나 5일 경기처럼 그는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타니는 7일 휴스턴과의 홈 경기에서 2번 지명타자로 나서 잭 그레인키를 상대로 1회 안타를 때렸고, 2루 도루에도 성공했다. 그의 꿈 덕분에, 팬들은 매일 다른 오타니를 본다.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