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민 “캐스팅 안되서 모바일 화보 찍었어요”

    임성민 “캐스팅 안되서 모바일 화보 찍었어요”

    [일간스포츠] 입력 2006.08.11 13:32 수정 2006.08.1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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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민(37)을 아는 친구들이 놀라는 사실 하나. “모두들 내가 시집 빨리 갈 줄 알았다. 어릴 적부터 조숙했기 때문이다. 지금 결혼 안했다고 하면 놀란다.”

    이들이 놀라는 두번째 사실. “아나운서 된 것에 놀라 한다. 나는 아나운서 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사회를 본 적이 없다.”
    그가 최근 주변 사람들을 세번째 놀라게 했다. 일주일 전 모바일 화보집을 내고 늘씬한 몸매를 노출하며 인터넷을 후끈거리게 만들었다. 젊은 연예인의 것보다 두 배 정도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사실 그의 모바일 화보집 촬영은 ‘아나운서’란 이미지에 비추어 무척 파격적이다. SBS 아나운서 김주희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 참가만큼이나 논란거리다.

    지난 9일 잠실 롯데월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성큼성큼’이란 표현이 어울리게 큰 키(168㎝)로 걸어 들어왔다. 미리 요청한 그의 어린 시절 사진들을 훑어보면서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새빨간 옷을 입고 지휘봉을 돌리는 초등학생 고적대 지휘자. 중학생 치어리더. 허슬 공연자(스트리트 댄스의 일종). 중창단 단원. 고등학생 전교 응원 단장. 대학생 연극 배우 …. 고등학교 때 꿈은 미스코리아. 대학 가요제. 개그제. 연기자 도전 …. 이 끼 많은 소녀가 연기자가 아니라 아나운서로 지내 왔다니.

    남들이 성공한 아나운서로 부러워하던 그때도 그는 무병 걸린 사람처럼 밥을 못 넘기고. 잠을 못 자고. 얼굴이 퉁퉁 붓고. 늘 감기 걸린 것 같고.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상태로 지내 왔단다.

    “화보를 왜 찍었냐고요?” 이 한마디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 내 관심은 연기 뿐이다

    2001년 프리랜서로서 연기자의 길을 선언한 그는 곤경에 처해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지난해 KBS 2TV <스타 골든벨> 진행을 노현정 아나운서에 넘겨 준 이후 약 1년 동안 방송 출연이 없었다. 모바일 화보 촬영은 그에겐 극약 처방인 셈이다.

    “화보 말고는 대중과 소통할 방법이 없었다. 작품 캐스팅이 안되는데 뭘 보여 주겠는가? 다들 내가 은퇴한 줄 안다. 고정 CF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MC할 의사가 있는데 사람들은 연기자만 고수하는 걸로 생각한다. 곤란한 상황이다. 내가 일일이 다 찾아다니면서 설명할 수도 없고.”

    그는 우리에 갇힌 사자처럼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죄 지은 것도 아닌데. 권유해 줄 게 있으면 그대로 하겠다. 안 좋은 인식이 있는 것 왜 모르겠는가? 돈 하고 전혀 관계 없다. 연기하고 싶은 계획밖에 없다. 진짜 캐스팅 안되서 찍었다.”

    그는 ‘우아한 아나운서’라는 이미지의 덫에 걸려 있다. “프리랜서 이후 3년 동안은 바빴다. 나는 진지하게 연기하려 했으나 캐스팅하는 사람은 카메오 혹은 화제성만 기대했다.


    홍보용으로 이용된 것뿐이다. 연예계로 나와 아나운서부터 연기자까지 나를 매니지먼트할 사람도 못 만났다. 오해투성이다. MC 쪽에선 연기한다고 그만두지 않았느냐며 캐스팅 안하고. 연기 쪽에선 연기 검증이 안돼 캐스팅 안한다.”

    어릴 적부터 꿈은 오직 자신을 표현하는 배우였다. 보이는 것보단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많아 내면이나 정신 세계를 보여주는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 “연기 바닥에서 나는 신인이다. 배역은 크든 작든 상관없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큰 배역 바라는 줄 알겠지만 어떤 역이든 좋다. 연예인이 되어 성공하고픈 것보다 연기해서 성공하고 싶은 거다.”

    지난해 <스타 골든벨>을 (타의로) 그만두고 막막했다. 지금까지도 쉰 게 아니라 계속 일을 찾아다녔다. 연기 학원·무용 학원 다니고. 보컬 레슨도 받고. 오디션도 보고. 캐스팅한다면 감독도 만나고. 그때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지금도 1~2주에 한 번은 간다. 예전에 체력이 떨어지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부분을 회복하게 됐다. 화보 촬영은 한 달 운동하고 바로 찍었다.

    “나는 요가한 적도 없고. 운동에도 관심이 없었다. 올 5월부터 내 자신을 다잡기 위해 승마와 헬스를 시작했다. KBS 아나운서 때 안 맞는 일 참으면서 하니 얼굴이 항상 부어 있었다. 운동을 하니 피가 아래로 내려가 얼굴이 많이 작아졌다. 운동은 얼굴 작아지는 비법”이라며 간만에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 나는 어디서나 튀는 존재였다

    그는 오후 6시에 퇴근하면 6시 30분에 바로 집에 오는 가정적인 직장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컸다. 3녀 1남 중 맏이여서 어릴 적부터 카리스마 있는 언니 스타일로 자랐다. 항상 끼가 넘쳤고.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컸고.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섰다. 남의 눈에 띄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격 했고. 그 자신이 스스로 나서진 않았다.

    마당에서 100여 그루의 나무를 가꾸는 걸 즐긴 아버지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영어 교사 딸을 두는 꿈을 꿨다. 반면 딸은 어릴 적부터 연극영화과 가는 꿈을 키웠다. 이때부터 임성민은 욕망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결국 나는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대학(이화여대 영어교육과)에 갔다. 많이 울었다. 나는 여대도 싫었고. 남녀 공학 가서 다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 2년 동안 방황했다. 사범대 사람들은 내 관점에서 고지식했다. 서클에 눈을 돌려 합창단·연극반에 몰두하며 ‘직업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것 해야지’라고 결심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대학 4학년 때인 1991년 TV에서 KBS 탤런트 모집한다는 공모를 보고 아무도 몰래 시험을 봤다. 생각도 못했는데 단번에 붙어 버렸다. 합격했다고 실토를 했더니 아버지는 일주일 동안 고민 끝에 “No”를 선언했다.

    탤런트는 포기하고 아나운서 시험으로 업종 전환했지만 ‘탤런트 해야 하는 건데’라고 후회할 정도로 아나운서와 인연이 너무 없었다. 면접 가면 자신만 원고를 못 받는 등 운까지 없었다. 졸업 1~2년 차여서 신문사·대기업 시험도 계속 미끄러졌다. 남은 길은 아나운서밖에 없었다. 결국 3년 만에 KBS 아나운서에 합격했다.

    “너무 힘들게 준비해 합격 후 한 달 동안 앓아 누웠다. 그 노력을 진작 연기하는 데 썼으면 지금쯤 신 내린 연기를 하고 있을 거다. 하루 18시간씩 공부했다. 시험 볼 때 백(배경)도 없고. 집에서 반대하니 1등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나운서도 진짜 하고 싶은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과는 반대로 중립을 지켜야 했고 의견이나 감정을 자제해야 했다. 아나운서 하면서도 밤에는 연기 학원에 다녔다. “웬만하면 아나운서로 있으려 했다. 그러나 나는 표현하고 싶은 병에 걸려 있었다.” 뒤늦게 프리랜서를 선언한 사실은 그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 준다.

    ■결혼은 사치다

    임성민에게 결혼은 그야말로 사치다.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배우가 못된 한이 그를 놓아 주지 않는다. 힘들게 아나운서 생활한 것도 이제부터 연기를 하며 보상을 받아야 할 터.

    “결혼은 내 사회 생활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나 결혼은 내 인생에 항상 두번째였다. 하는 게 잘되야 하는데 ….”

    그는 결혼한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나는 독신주의자가 아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꾼다. 연기 때문에 방황하고 괴로웠던 게 결혼과 인연이 없던 이유다. 나랑 만나는 남자들은 한결같이 내가 일을 그만두기를 원했다. 그러니까 만남이 계속 될 수 없었다.”

    방송사 준비하며 도서관에서 매일 18시간씩 공부하던 시절처럼 언제가 자신이 맡을 연기를 위해 자신을 가다듬는 늦깎이 신인. 그래서 노력의 가치가 지구상에 살아 있다면 누군가가 그에게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팁>“노현정. 축하해요”
    후배 아나운서 노현정이 재벌가로 시집가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그는 “나는 아나운서가 이것저것 하면서 논란을 만드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 아나운서 시절 여러 프로의 MC를 맡았지만 그건 회사의 지시를 따랐을 뿐 내 의지와 상관 없는 일이었다”면서 “노현정의 경우 자기가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둘 수 있다. 행복 추구권이 있지 않은가?

    특이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녀 관계는 둘밖에 모른다. 선 봐서 일주일 만에 결혼하는 사람도 많다.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1. 다섯 살 무렵 청담동 집에서 동생과 함께 찍었다. 3녀 1남 중 장녀여서 어릴 적부터 “어른스럽다”. “장군감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키도 또래에 비해 목 하나 컸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사람들이 6학년으로 볼 정도였다.

    2. 초등학교 1학년 때 사진으로 배경이 된 장소는 어딘지 모른다. 비키니를 입은 게 눈에 띈다. 그는 “나는 어릴 적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멋쟁이였다”라고 자부한다. 똑같은 옷은 다시 입고 다니지 않았고. 초등학교 땐 겨울에도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그가 지나가면 남자 애들이 노래를 불렀다.

    3. 초등학교 5~6학년 2년 동안 고적대 지휘자를 했다. 맨 앞이 임성민. 워낙 튀었기 때문에 동네에서 꽤 유명했다. 남들 앞에서 자신을 보여 주길 좋아했다.

    4. 대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1주일 동안 미국 여행을 했다. 사진 속 장소는 그랜드캐년. 항상 유행에 앞서 갔다. 보글거리는 그 머리 스타일은 당시로는 파격적이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머리를 한두 달에 한 번씩 바꿨다.

    5. KBS 아나운서로 입사한 다음해인 1995년 <뉴스라인>을 진행할 때의 모습. 타이트 스커트를 입고 걸어 들어와 의자에 앉는 파격적 뉴스 예고로 논란거리가 됐다. 뉴스 예고 시청률이 20%까지 나왔다. 그 몇 개월 전 장은영이 시작했으나 임성민이 맡으면서 각종 칼럼의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6. 지난 7월 11~13일 제주도 일대를 돌며 촬영한 모바일 화보.

    임성민 모바일 화보 전부 보기

    ■임성민은?
    생일: 1969년 7월 8일. 서울
    체격: 168㎝. 49㎏
    혈액형: O형(남들은 A형이나 AB형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아버지 임수현씨와 어머니 여주희씨의 3녀 1남 중 장녀
    학력: 학동초-언주중-정신여고-이화여대 영어교육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취미: 등산
    데뷔: 91년 KBS 14기 탤런트. 94년 KBS 20기 아나운서
    진행: KBS <뉴스 라인> <뉴스 광장> <연예가 중계> <도전 지구 탐험대> <스타 골든벨> 등

    글 장상용 기자 [enisei@ilgan.co.kr]
    사진 임현동 기자 [hyundong30@je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