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함께 어울리는 생태도시, 울산

문명과 함께 어울리는 생태도시, 울산

[일간스포츠] 입력 2008.05.2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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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이 숨가쁘게 달려온 40여 년. 하루 스물 네 시간 뿜어내는 공장 굴뚝의 매연 속에서도 '공업한국'을 외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덕분에 대한민국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됐다. 돌아서면 배가 고팠던 시절 누구나 부러워하던 고장이었다.

세월이 바뀌면서 졸라맨 허리띠는 조금씩 풀어졌고, '보릿고개'란 단어조차 이제 역사책에서만 볼 수 있는 아득한 옛말이 됐다. 이처럼 '등 따시고 배 부른' 시절이 되자 부러움 대신 신랄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경제발전의 주역이란 말은 간 데 없고, 오염으로 인한 '환경파괴의 주범'이란 낙인이 찍히고 말았던 것이다. 울산은 이같은 오명을 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덕분에 문명과 문화가 어울리는 생태환경도시로 거듭나는데 성공했다.

도시, 특히 울산과 같은 대도시로 떠나는 여행은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편리함'이란 문명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나만의 자유'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은 국내 제일의 공업도시라는 이미지와 달리 적지않은 볼거리를 갖고 있다.


울산에 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태화강이다. 급속한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한때 수질오염의 대명사가 된 상처를 안고 있는 강이기도 하다.

그런데 울산이 지난 2005년 전국체육대회를 개최하면서 태화강에서 조정경기를 개최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대표적 오염하천으로 꼽히던 이 강에서 수상경기를 치른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3급수에도 미치지 못하던 강물이 연어와 숭어가 뛰어오르고 각종 철새들이 둥지를 트는 1급수로 탈바꿈한 사실이 알려졌고, 대회는 보란듯이 치러졌다.

이후 태화강에서는 매년 물축제가 열리고, 봄·가을에는 용머리 모양을 한 용선 무료체험과 카누교실이 열리고 있다. 또한 울산시가 내년 열리는 세계용선대회의 개최 장소를 태화강으로 유치하는데 성공했을 만큼 깨끗한 수질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기도 했다. 실제 용선 체험을 하는 동안 빌딩 숲을 배경으로 물고기들이 강물 위로 뛰어오르는 한가로운 풍경은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태화강의 생태를 알리는 또 하나의 이정표는 십리대밭 사이를 오가는 시민들의 표정이다. 태화교와 삼호교 사이에 태화강을 따라 폭 30~40m, 길이 4㎞에 걸쳐 형성된 대밭은 일제 때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했다. 한 때 강물의 흐름을 방해한다며 없애려 하는 등 곡절 끝에 지금은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생태공원이 됐다. 태화강의 오염으로 악취가 가득했던 10여 년 전 썰렁하던 모습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강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반구대암각화가 오랜 세월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작 시기가 신석기 시대 후기인 7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암각화에는 울산을 대표하는 고래 10여 종 58점을 비롯, 이들을 사냥하는 어부, 호랑이·사슴·멧돼지·거북이 등 갖가지 형태의 그림 296점이 새겨져 있다. 선사시대 원시인의 공동작업·선박 건조술·협동심 등을 잘 알 수 있어 학술적 가치도 높다. 울산시는 반구대암각화와 인근 천전리각석을 이용한 암각화전시관을 최근 완공, 개장을 앞두고 있다.
 
30~40대 이상이라면 어린 시절 장독대 심부룸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어쩌면 키를 훌쩍 넘는 짙은 감색의 항아리에 담긴 고추장이며 된장을 꺼내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간장이나 된장을 담는 장독에서 얼큰한 된장을 넣고 끓여먹는 뚝배기, 반찬을 담아내는 종지까지 옹기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었다.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뜻하는 옹기는 생명의 근원인 흙과 불, 장인의 손길이 어우러져 탄생한 우리 민족만의 음식 저장용기이다. 찰흙의 알갱이가 섭씨 1200도의 불에서 구워지면서 미세한 구멍이 생기고, 그 사이로 공기와 수분이 드나들면서 탁월한 숙성과 보존 기능을 갖고 있는 '숨 쉬는 그릇'이기도 하다.

이처럼 옹기는 청자나 백자처럼 화려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지만 인간의 본성과 지혜를 오롯이 담고 있다. 옹기에 곡물과 씨앗을 저장하면 이듬해까지 보존할 수 있으며, 다른 도자기와 달리 부서지면 2년 안에 자연 분해돼 흙으로 돌아가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옹기는 현대화의 산물인 스테인리스·플라스틱 등에 밀려 차츰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같이 사라져가는 옹기 문화가 아쉽다면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외고산마을을 찾아볼 만하다. 우리 민족과 더불어 수천년을 같이 해온 옹기가 아직 건강하지만 가쁜 숨을 내쉬고 있기 때문이다.
외고산마을은 국내 최대 규모의 옹기 산지이다. 한국전쟁 당시 조성된 마을은 한 때 200가구 이상이 옹기 생산에 종사했을 만큼 전성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전통가마 9기에 전문 도공이 19명에 불과할 만큼 줄었다.

그래도 옹기에 대한 외고산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2000년 이후 매년 열리고 있는 '울주외고산옹기축제'를 지난 3월 특허청에 서비스표 등록을 마쳤고, 내년에는 세계옹기엑스포 개최를 확정했을 정도다.

전통문화 고수에 대한 고집도 자부심 못지않다. 새로운 형태의 옹기를 개발하는 등 발전적 변화를 원하는 소비자의 기대에 대해 신일성(65) 외고산마을 옹기협회 회장은 "변하면 옹기가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갔던 도공은 대부분 옹기쟁이였다. 이들은 모두 자기쟁이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옹기가 좋은 것은 전통 외에 성형기법이나 성능에서 세계 최고이기 때문이다. 이걸 왜 바꾸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3대째 옹기쟁이로 살고 있는 신 회장은 지금도 전통 물레를 이용한다. 비록 기력이 떨어져 물레를 돌리기 위해 전기모터를 이용하기는 하지만 흙을 밟아 불순물을 제거하고 공기를 빼는 흙밟기, 다져진 흙을 가래떡처럼 길게 늘이는 질재기, 옹기의 형상을 흙으로 쌓아올리는 태림, 부채질, 그늘에서 건조한 뒤 양잿물을 입히고 문양을 새겨넣는 건래일, 굽기 등 모든 공정에서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외고산마을에서는 이처럼 제작한 옹기를 판매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 옹기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울산=글·사진 박상언 기자 [se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