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준의 how are you ①] 정종선 “차범근 감독 속 썩이다 고교 축구 명장 됐다”

    [채준의 how are you ①] 정종선 “차범근 감독 속 썩이다 고교 축구 명장 됐다”

    [일간스포츠] 입력 2009.10.28 10:30 수정 2009.10.2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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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30일 이집트 수에즈의 무바라크 경기장에서 벌어진 20세 이하 월드컵 독일전. 후반 김민우가 솟구치더니 천금의 동점 헤딩골을 터뜨렸다. 홍명보 감독은 벤치에서 벌떡 일어섰고 달려온 김민우와 뜨거운 포옹을 했다.

    같은 시간,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 있는 언남고등학교 축구부 숙소에선 환호의 목소리가 터졌다. 선수들과 경기를 지켜보던 정종선(43) 감독도 "김민우 잘 했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20세 이하 대표팀 영웅 김민우와 서용덕·유일한, 고교생 최성근까지 모두 정 감독의 손을 거쳐 간 제자들이다.

    때문에 기쁨은 홍 감독 이상이었다. 현역시절 국가대표 선수로 뛰었지만 '돌아이'로 통했던 정종선은 언남고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언남고는 창단 원년인 2001년 처녀 출전한 대회부터 우승하는 등 우승제조기라 불리는 팀이다. 그래서 고교축구계선 이런 언남고를 가리켜 고교리그의 '레알 마드리드'라 부른다.

    "선수시절 내가 왜 그랬을까? 부끄럽다"

    정 감독은 연세대 1학년을 마친 1985년, 포항 아톰즈에 당시로는 거금인 계약금 3000만원을 받고 입문했다. 그러나 축구에는 열정을 보이지 않았다. 팀에선 그런 정 감독을 내버려 둘리 없다. 2군으로 내려보냈다. 그러자 그도 축구를 포기하다 시피 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카페를 차려 유흥가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포항에서는 싹수가 노랗다며 자유계약선수로 풀었다. 축구선수가 될 수 없다는 정상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정 감독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인간이 아니었다. 어린나이에 돈이 너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카페를 시작한지 2년 만에 입대 영장을 받았다. 운 좋게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다. 그곳에서 다시 축구에 눈을 떴다.

    "87년 1월에 입대했는데 명색이 축구 선수란 인간이 운동장 다섯 바퀴를 못 도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해보자 하고 이를 갈았고 전역과 동시에 울산 현대에 입단할 수 있었습니다"

    못된 망아지 같았다

    문제는 성인 팀에 가서도 그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다. 1990년 차범근 감독 부임 후 그는 기 싸움을 했다. "차 감독님이 동계 훈련때 뛰라는데 나는 죽어도 못 뛴다고 버텼어요. 나는 원래 안 뛰거든요. 그럼 걸으라고 해서 주머니에 오징어 넣고 가서 질겅질겅 씹으면서 살살 산책이나 했죠.

    감독님이 얼마나 내가 미웠겠어요" 당시 차 감독과 정 감독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정 감독은 이적을 요구한 상황이었고, 차 감독은 이적 불가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후 정 감독은 차 감독의 인정을 받았다. 그의 축구 재능을 높이 산 것이다. 이어 국가대표에도 뽑혀 전성기를 맞았다.

    한동안 조용했던 정 감독이 다시 좀이 쑤셨다. 94년 미국 월드컵 이후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차 감독이 지휘봉을 놓은 것과 맥을 같이 했다. 이후 현대에서 잊적 한 후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었다. 1998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정 감독은 그런 자신의 지난 시절에 대해 "못된 망아지 같았다"고 말한다.

    근성은 나의 힘

    현역선수가 2년을 쉰 후 자신의 기량을 다시 100% 회복할 수 있는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한 번 잃어버린 운동능력은 회복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회복할 수 있는 경우는 지능이 뛰어나거나 산천적으로 하늘이 내린 몸이어야 한다.

    정 감독은 "내가 기본적으로 공은 잘 찼어요. 몸도 타고 난것 같고요. 그리고 하고야 말겠다는 근성이 있었던 게 다시 축구선수로 뛸 수 있게 한 것 같습니다"고 말한다.

    그는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되고야 말겠다고 생각한다. 그의 승부 근성 덕분에 그는 선수로서도 성공했고, 지도자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는 고교무대에서 이미 명장 반열에 올랐다.

    24년만에 대학 졸업

    2008년 정감독은 연세대 입학한지 24년 만에 대학 졸업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사람들은 그냥 다닌 줄 아는데 진짜 열심히 했다. 어린 학생들의 시선이 많이 따가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꼭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3년간 꼬박 주경야독 했다. 학교 수업은 꼭 들었다. 남부러울게 없는 지금 그에게 졸업장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가 이런 노력을 한 이유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 선수시절을 어린 제자들에게 가감 없이 말한다. "나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내가 어릴 때 나를 잡아줄 선생님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의 목표는 청소년대표팀 감독이다. "청소년 감독은 꼭 할 생각입니다. 물론 때가 돼야 하는 것이지만요. 저는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입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청소년만큼은 우리가 해볼 만하다. 세계무대와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아깝게 8강에 머물렀다. 내게 좋은 기회가 온다면 나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정종선 프로필
    생년월일 1966년 3월20일
    출신교 진주봉래초-진주중학교-영등포공고-연세대

    경력
    2009년 춘계·추계연맹전 우승
      춘계·추계연맹전 최우수지도자상
    2008년 서울특별시장기
    2007년 대통령금배·고교선수권 우승
      대통령금배·고교선수권 최우수감독상
    2006년 서울특별시장기 우승
    2005년 추계한국고등학교축구연맹전 우승
      추계한국고등학교축구연맹전 최우수지도자상
    2003년 백록기 우승
      백록기 전국고등학교 축구대회 최우수지도자상
    2002년 춘계 한국중·고축구연맹전 우승
      춘계 한국중,고축구연맹전 최우수지도자상
    2001년 언남고등학교 팀 창단 감독
      처녀출전 서울특별시축구협회장배 우승
    1998년 선수은퇴
    1994년 미국월드컵 대표
    1990년~1995년 국가대표
    1995년 전북현대 입단
    1990년 울산현대 입단
    1987년 상무 입대
    1985년 포항아톰즈 입단

    채준 기자 [doori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