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 그림 속 말 이야기 35. 돌격하는 경기병

[승마] 그림 속 말 이야기 35. 돌격하는 경기병

[일간스포츠] 입력 2012.09.14 10:32수정 2012.09.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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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미(40)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1812년 파리 살롱전에 3.5미터 높이의 기마병 그림이 출품됐다. 프랑스는 21살의 패기 넘치는 젊은 화가의 그림에 열광했고 그에게 금메달을 수여했다. '돌격하는 경기병'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화가는 테오도르 제리코다. 나폴레옹의 시대에 화려한 금술을 수놓은 군복을 입고 앞으로 돌격하는 전사의 모습은 프랑스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박력 있는 자세와 역동적인 구도는 또한 프랑스인의 영웅심에도 자극을 주었다.

포탄 연기로 가득한 전장에서 잔뜩 흥분한 회색 얼룩무늬 말이 앞발을 한껏 쳐들고 앞으로 내달리려 하고 있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콧구멍은 가쁜 숨으로 크게 열려있다. 멀리 보이는 포화와 뒤집힌 마차는 어쩌면 돌격하는 병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흥분과 공포가 묘하게 섞인 말의 눈동자는 튀어나올 듯 힘이 들어가 온힘으로 전진 중이다.

반면 표범가죽 안장 위에 올라탄 경기병의 얼굴은 뒤를 향해 있고 알 수 없는 고요함이 어려 있다. 말과 사람의 대조적인 표정이 가져다주는 묘한 부조화에서 제리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제리코는 프랑스 대혁명기 동안 부상해서 제정기에 집권세력의 기반이 된 전형적인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곱슬거리는 머리스타일을 만드는 등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다녔던 댄디였다.

또 위험하고 거친 스포츠를 통해 남성적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마초적 감성도 동시에 지녔다. 그는 승마를 즐겼는데 특히 거칠고 사나운 말만 골라 탔다고 한다. 그는 말을 통해 원초적 에너지를 느꼈고 처음 그림을 배울 선생으로 베르네를 선택한 것도 그가 말그림에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자로 태어났고 젊은 나이에 화가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후배 화가들에게는 선구적이고 신화적인 예술가로 칭송받았지만 제리코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서른셋의 나이에 말을 타다 다쳐서 사망할 때까지 그는 우울증과 자살 기도, 몇 번의 중병과 파산을 겪었다. 제리코의 이러한 삶의 모습은 낭만주의의 선구자, 모던한 예술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당대 사람들은 그를 ‘미술계의 바이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돌격하는 경기병'을 위해 모델을 서준 알렉산더 디외도네는 실제로 경기병이었으며 화가 제리코의 친구였다. 이 그림이 경기병의 운명을 점친 것은 아니지만 그는 곧이어 있었던 러시아 원정에서 전사했다.

▲양희원(34) KRA한국마사회 교관

그림속 말은 온몸을 비틀면서 흥분해 있다. 이 자세는 역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말이 취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운 동작이다.

말의 포즈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의 예비동작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기립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엄청난 힘을 쏟아서 발진하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달려가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기립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것은 앞발이 많이 들리지도 접히지도 않았고 뒷다리를 모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말이 기립을 하려면 뒷다리를 모아야 하는데 그림에서 뒷다리는 앞뒤로 벌어져 있다. 중심이 앞으로 쏠려있어 달리는 동작에 가깝다.

경기병이 말을 타는 자세는 '스포츠 승마'가 아닌 실용적인 '생존 승마'로 보인다. 안장역시 장거리 이동에 맞게 안장꼬리가 높이 올라가 있어 기승자의 허리를 받쳐주고 있다.

말은 청해마이나 수말이다. 말의 크기는 보통사이즈로 현재의 서러브렛 정도로 보인다. 외형의 특징을 보면 다리가 가늘고 머리가 작은 것으로 보아 아랍계열로 짐작할 수 있다.

정리=채준 기자 doori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