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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연 “피아노 보다 태권도, 태권도 보다 펜싱”

    [일간스포츠] 입력 2012-08-02 오후 9: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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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피아노 말고 다른 거 시켜보세요. 지연이가 도통 피아노엔 관심이 없네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여자애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배우는 게 피아노지만 김지연(24·익산시청)은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유치원에 다니던 딸에게 어머니는 “뭘 하고 싶냐”고 물었고 “태권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만히 앉아 있는 건 질색이었다. 진득하니 앉아 있지 못하는 그를 두고 친구들은 ‘발바리’라고 불렀다. 넘어져도 금방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잘 뛰고, 잘 웃던 김지연이 드디어 사고를 쳤다. 김지연은 2일 영국 런던 엑셀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펜싱 사브르 결승에서 러시아의 소피아 베리카야를 꺾고 금메달을 땄다. 김지연 자신을 비룻해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당차고 적극적인 플레이는 누가 뭐래도 이 날의 주인공이 김지연임을 보여줬다.

    ◇ 여학생들의 팬레터

    김지연은 초등학교 6년 내내 태권도 도복을 입고 다녔다. 큰 눈에 야무진 얼굴, 단발 머리, 하얀 태권도 도복. 초등학생 김지연을 설명하는 3가지 키워드였다. 학교 육상 대표로 대회에 나가 달리기 상도 많이 탔다. 가만히 앉아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릴 때보단 뛰어다는 게 적성에 맞았다.

    예쁘고 털털한 김지연은 인기도 많았다. 그런데 그를 좋아한 건 남학생들이 아니었다. 태권도 도복을 입은 김지연 옆엔 늘 여자 친구들이 따랐다. 중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부터 펜싱 선수로 활약한 김지연에 후배 여학생들이 팬레터를 보내곤 했다. ‘언니 열심히 잘 하세요’라고 손으로 적은 편지와 간식 등을 가져다 주곤 했다.

    김지연의 이모 홍미숙 씨는 “보이시한 매력에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남학생들은 지연이가 운동을 잘하니 함부로 장난도 잘 못 걸었다”고 회상했다. 예쁘게 꾸미는 덴 관심도 없었다. “아무래도 남학생들은 하늘 하늘한 여자애들을 좋아하지 않나. 펜싱을 하면서도, 남자 선수들은 지연이를 여자가 아닌 자기들과 같은 ‘선수’로 보는 거 같았다.” 홍 씨도 예쁜 조카가 남자들에게 의외로 인기가 없는 게 의아하다는 눈치였다.

    ◇ 할 말 하는 아이

    중학교(재송여중)에 진학한 태권도 소녀는 펜싱 선수가 됐다. 재송여중에서 펜싱을 가르치던 윤정수 코치가 김지연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또래보다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날렵했고 순발력이 좋았다. 더구나 김지연은 양손잡이였다. 한국엔 귀한 왼손 검객으로 키워볼 기회였다. 김지연도 절도 있게 칼을 휘두르는 펜싱의 매력에 빠졌다.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다. 전국 대회에 나가도 메달은 못 땄다. 그러나 윤 코치는 몇 년 안에 기량이 꽃피울 것으로 내다봤다. 윤 코치는 “무엇보다 당차고 당당한 성격에 믿음이 갔다”고 말했다. 선생님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하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랐다. 훈련 때도 김지연은 곧잘 자기 의견을 얘기했다. 펜싱을 반대한 어머니도 김지연이 직접 설득했다. 13세의 김지연은 어머니(홍희숙 씨)에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그런 당당함이 지금의 김지연을 있게 했다. 와일드 카드로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김지연은 세계랭킹 1,2위(각각 4강 및 결승)를 만나 당당하게 앞으로 전진했다. 금메달을 딴 뒤 김지연 스스로는 “미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그를 지켜 봐온 사람들은 “언젠간 칠 사고”를 예상하고 있었다.

    ◇ 광대가 불거진 야무진 딸

    TV에서 본 딸의 얼굴이 반쪽이 돼 있었다. 살이 없어 툭 불거진 광대를 보자 어머니 홍희숙 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어머니 홍 씨는 올 들어 딸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태릉선수촌에서 오로지 훈련에만 매진해 온 딸을 방해할까 “집으로 오라”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매일 딸과 영상 통화를 하며 그리움을 삭혔다. 김지연 역시 각오가 흐트러 질까 “올림픽 끝나고 실컷 함께 지내자”고 어머니를 달랬다.

    일을 하느라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했지만, 딸은 늘 숙제나 예습을 스스로 챙겼다. 학교에 청소 한번 하러 가지 못해도 스스로 학급 감투를 달아왔다. 영어 수학 학원 한 번 다니지 않아도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김지연이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지 못할 때 “제대로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해 그런게 아닐까”하고 어머닌 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밤새 눈물로 경기를 지켜봤다. 그러나 야무진 딸은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 정상에 섰다.

    부산=손애성 기자 iveria@joongang.co.kr
    사진=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